16년째 사업 지연 중인 위례신사선을 둘러싸고 위례신도시 주민과 서울시 사이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3기 신도시 광역철도인 고양은평선이 본격적인 착공을 위한 시동을 걸면서다.
4일 국토교통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는 고양은평선 광역철도 사업 기본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3기 신도시 광역철도 중 가장 빠른 속도다.
고양은평선은 서울 지하철 6호선 새절역(서울 은평구)에서 고양시청역(경기 고양시)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15㎞의 노선으로, 총 8개 역이 들어선다. 3기 신도시 창릉지구 광역교통 개선 대책의 하나로 추진되며 총 사업비는 1조7167억 원이다. 개통은 2031년으로 예정됐다.
고양은평선 개통 시 고양시청역에서 새절역까지 걸리는 시간이 기존 50분(버스)에서 20분으로 대폭 줄어든다. 경기도는 신속하게 기본 및 실시설계 작업에 착수, 사업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때문에 철도 통과가 예정된 능곡·향동·행신지구 일대 부동산 시장는 훈풍이 불고 있다. 서울 접근성이 높아지고 역 주변으로 각종 인프라가 마련되며 주택 가치가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됐다.
행신중앙로역(가칭) 인근 덕양구 행신동 ‘샘터2단지’ 전용 59㎡는 지난달 초 3억6900만 원(8층)에 거래되며 올 1월(3억2000만 원, 15층) 대비 5000여만 원 올랐다. 철도 노선이 지나지 않아 그동안 교통 불편을 겪었던 향동동 ‘DMC호반베르디움더포레4단지’ 전용 84㎡ A타입은 지난달 9억1000만 원(9층)에 손바뀜했다. 지난해 같은 달(8억500만 원, 18층)보다 1억 원 이상 뛰었다.
덕양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고양은평선과 환승 예정인 서부선이 지연되고 있긴 하지만, 6호선이라도 지금보다 빨리 갈아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매수 문의가 소폭 늘어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양시와 달리 위례신도시 주민 사이에선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다. 2008년부터 추진된 위례신사선 사업이 추가로 지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위례신도시시민연합은 2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서울시의 위례신사선 도시철도 민간투자사업 지정 해지 신청 처분에 대한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와 함께 서울행정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서울시가 위례신사선의 재정사업 전환을 추진한 데 따른 조치다.
위례신사선은 성남시 위례신도시와 서울 지하철 3호선·신분당선 신사역 14.7㎞ 구간에 12개 역사를 짓는 경전철 사업이다. 2016년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손을 뗀 데 이어 이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GS건설 컨소시엄 또한 올 6월 같은 이유로 사업을 포기했다.
GS건설은 서울시에 1100억 원 규모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최대 230억 원까지만 올려줄 수 있다는 입장을 표해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서울시는 공사비를 증액하는 내용의 사업자 제안 재공고를 두 차례에 걸쳐 올렸으나 참여 의사를 밝힌 건설사는 전무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가 기록적으로 오른 상황에서 투입 비용이 비교적 큰 철도 사업에 무리하게 들어가려는 회사는 찾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5일 예정된 기획재정부 민간투자심의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위례신사선 재정투자방식으로의 변경 안건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정투자로의 전환은 갑작스러운 조치가 아니라 6월 이후 제3자 제안 재공고를 올릴 때부터 추진된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사업으로 전환되면 사업은 최소 3년 이상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내년 서울시 철도망 구축계획을 변경한 이후 빠르면 2026년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다시 거쳐야 한다. 예타를 빠르게 통과하더라도 기본계획 수립부터 사업계획 승인까지 거쳐야 비로소 착공이 가능하다. 업계에서 위례신사선 개통은 2036년 이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위례신도시 주민들은 입을 모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3년 광역교통개선대책 분담금까지 내며 사업 조기 추진을 바라왔는데 예타부터 재시행한다는 것은 수포가 된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대광위가 3기 신도시 ‘강동하남 남양주선’(9호선 연장)과 하남 교산지구 ‘송파하남선’(3호선 연장) 등 남은 3기 신도시 광역철도 사업 속도를 높이겠다고 선언하며 불만이 더욱 증폭됐다.
김광석 위례신도시시민연합 대표는 “당초 정부는 2021년 위례신사선 완공을 약속했으나 아직 착공조차 못 하고 있다”며 “이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분양 사기”라고 말했다. 이들은 2018년 위례신사선이 한 차례 민자 적격성 조사를 통과한 바 있는 만큼 예타를 면제하는 방식으로 사업 일정을 단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업계 전망은 불투명하다. 한 철도업계 종사자는 “위례신사선 예타를 면제해버리면 다른 지역에서 추진되던 철도 사업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사비 급등으로 인한 건설업 침체기임을 고려할 때 철도 사업이 정상화하기까지 다소 시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승우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계획된 광역철도 다수가 민간 투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어 사업성이 낮으면 빨리 현실화하기가 어렵다”며 “모든 사업을 재정투자로 전환할 수 없는 만큼 건설금융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제도개선부터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