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생활형숙박시설(이하 ‘생숙’)의 주거 용도로의 활용을 허용해달라는 수분양자들 요구에 응답해 수년 만에 오피스텔로의 용도 전환을 허용한 한편 각종 규제 문턱도 낮췄다. 하지만 생숙을 바라보는 수분양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가치가 크게 하락한 데 이어 대출 규제 등 여전히 어려움이 남아있어서다.
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롯데캐슬 르웨스트’ 수분양자 600여 명은 4월 시행사와 분양대행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아직 취하하지 않았다. 이 단지의 입주 기한은 지난달 29일이었으나 이날 기준 입주를 위해 잔금을 치른 입주예정 가구는 총 876실 가운데 1% 정도다.
2021년 8월 분양 당시에는 호텔과 오피스텔을 결합한 생숙이었다. 법적으로 숙박업에 해당해 주택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지만, 집값 상승기이던 2020~2021년 내 집 마련 수요가 몰리며 생숙에서 실거주하는 이들이 늘었다. 정부는 생숙은 주거용이 아니라는 원칙을 고수하며 용도 변경을 미이행하면 이행강제금(건물 공시가의 10%)을 부과하기로 했다.
올해로 유예기간이 끝나며 생숙 수분양자들은 내년부터 이행강제금을 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이행강제금을 내지 않으려면 퇴거하거나 오피스텔로 용도를 변경해야 한다. 이에 입주예정자들은 시행사인 마곡마이스PFV(특수목적회사)가 분양 당시 실거주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허위 광고를 했다고 주장, 잔금납부와 입주를 거부하고 계약 해제를 이유로 하는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8월 서울시가 최초로 롯데캐슬 르웨스트의 용도변경을 허용하며 상황이 반전되는 것처럼 보였다. 생숙을 오피스텔로 전환하려면 바닥과 복도 폭을 주거 용도에 맞게 재시공해야 하고 주차장도 손봐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마곡마이스PFV가 주차장 부지 확보를 위해 200억 원을 기부채납한다는 카드를 꺼내든 것.
정부도 오피스텔 용도전환 필요성을 받아들여 10월 생숙의 주거 용도변경 관련 규제 문턱을 대폭 낮췄다. 복도 폭이 오피스텔 기준(1.8m) 이하라도 설비를 보완하면 인정하고, 주차장 역시 외부 주차장을 설치하거나 상응 비용을 내면 추가설치를 면제하기로 했다.
입주예정자들은 여전히 계약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호가가 분양가보다 떨어진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가 붙은데다 다수의 하자가 발견됐다는 이유에서다. 한 수분양자는 “10억 원이 훌쩍 넘는 돈을 주고 들어왔는데 마음고생만 하고 이젠 하자 문제도 터졌다”며 “부동산에 내놔도 매매 아닌 전세 문의만 들어와 걱정”이라고 말했다.
시행사의 최대주주 겸 시공사인 롯데건설은 중도금과 잔금을 내지 않는 수분양자를 대상으로 계약금(분양 대금의 10%)을 몰취하겠다는 강수를 내놓은 상태다. 소송을 이어가는 수분양자에겐 중도금 연장도 중단할 방침이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지난달 29일(입주 기한) 이전까지 소송을 취하하고 입주 의사를 밝힌 이들에 한해 중도금 연장이 가능했다”며 “분양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은행에서 시행사로 대위변제 요청이 오면 계약해지와 계약금 몰취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계약 취소를 위한 소송전에 돌입한 곳은 이 단지뿐만 아니다. 인천 연수구 ‘힐스테이트 송도 스테이에디션’ 수분양자 또한 올 상반기 시행사를 상대로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소를 제기했다. 7월 입주가 시작됐으나 중도금과 잔금 납부를 거부하고 입주 거부를 이어간 탓에 현재(5일 기준) 총 608가구 중 1.8%만 입주를 완료한 상태다.
서울 중구 ‘세운푸르지오그래비티’ 수분양자 150여 명은 시공사와 시행사, 분양대행사를 상대로 계약 취소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수분양자들은 분양 당시 거주가 가능하다는 대행사 직원의 말을 믿고 계약했다며 허위 광고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시행사와 분양대행사 측은 생숙임을 고지했고, 확인서에 수분양자들의 자필 서명까지 받았다며 맞섰다.
한국레지던스연합회에 따르면 올 7월 기준 분양계약 취소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제기한 전국 생숙 수분양자는 1000여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마피로 손해로 본 것은 물론 최근 엄격해진 대출 규제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롯데캐슬 르웨스트의 전용 88㎡ 분양가는 14억5600만∼16억5400만 원 선이었으나 현재 호가는 12억~13억 원 사이로 형성돼 있다. 힐스테이트 송도 스테이에디션 전용 83㎡의 최고 분양가는 6억7750만 원이었으나 현재 6000만~1억 원가량 낮은 가격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
주요 시중은행은 이달 초부터 비아파트 담보 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익형 부동산의 집단대출을 전면 금지하기 시작했다. 2금융권 또한 잔금대출 허리띠를 졸라맸다. 수분양자들은 기존 분양가의 70~80%까지 나오던 대출을 30~50%까지만 받을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선 생숙 관련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계약서에 명시돼있지 않더라도 계약 당시 ‘주거 가능’ 등의 말이 착오를 일으켰다는 점이 인정되면 취소가 가능할 것”이라며 “손해배상청구의 소도 법리적으론 충분히 제기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사정을 자세히 따져봐야 한다”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