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리스크 금융시장 집어 삼키나…“증시 변동성 더 커진다”[탄핵 불성립]

입력 2024-12-07 21:47 수정 2024-12-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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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교착 상태 장기화에 외국인 이탈 이어질 것”
“매크로 불안한데 리더십도 흔들…정책 대응 기대↓”
“수급이 펀더멘털 압도…원달러 환율 1450원대 대비”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한국 정치권이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얼마나 잘 대응하느냐에 따라 투자자들이 한국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내릴 때 적용하는 위험 프리미엄이 줄어들 수 있다.(S&P글로벌)

과거 두 탄핵(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이벤트 모두 국회 표결 및 헌재 결정 등 주요 이벤트 날짜엔 외국인의 전술적 이탈을 제외하면 강력한 외국인 자금 유출을 주도하진 않았다.(골드만삭스)

‘블랙 먼데이(Black Monday, 검은 월요일)’가 연출 될 것인가. 7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6개 야당이 공동 발의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서 의결 정족수(300명) 미달로 최종 불성립됐다. 시장 참여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 무산이 몰고 올 여파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비상 계엄령’으로 촉발된 정치적 이슈가 한 차례 금융시장과 증시에 반영이 됐다고는 하지만, 여야 대립 정국이 또 다시 큰 회오리를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인 ‘엑소더스’(대탈출) 가능성에 시장 참여자들이 느끼는 긴장은 어느 때보다 높다. 이번 2024년판 한국 경제 위기는 메가톤급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금융시장 더 움츠러드나

대내외 악재로 가뜩이나 살얼음판인 금융·외환시장은 계엄령과 탄핵 무산 등의 충격파를 불안 속에 주시한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국정 공백이 길어지면 한국 경제와 기업이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퍼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미국 월가의 한 연기금 관계자는 “대통령의 탄핵 이슈는 투자자 관점에서는 ‘급’이 다른 이벤트”라며 “한국에서 정치적 불안기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할지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정책을 제대로 이끌지 시장에선 물음표를 단다. 더불어민주당이 3일 계엄령 발동을 위해 참석한 국무회의 참석자들을 쿠데타(더불어민주당 주장) 동조 세력으로 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국민이나 기업 등 경제 주체들도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최 부총리는 주한 외국 기업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6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공동으로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등 6개 주한 외국 상공회의소 대표가 참여하는 외국 상의 간담회를 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와 경제 활동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평상시와 같은 체계화된 정책 대응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무제한 유동성 공급 등의 조치도 내놨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3일 이후 6일까지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 3일 2500.10이던 코스피는 6일 2428.16까지 추락했다. 외국인은 1조 원이 넘는 주식을 팔았다.

뉴욕에 나와 있는 금융당국자는 “한국이 정치적 혼란을 조기에 수습하거나 사태 해결을 위한 일정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면 투자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정치적 혼란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줄 경우 외국인의 자금유출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가 터진 후 4일부터 6일까지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은 국채를 1478억 원어치 순매도했다.

한국이 발행한 채권 등에 대해 국가의 위험도를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0.32%포인트(p) 수준에서 3일(미국 동부시간 기준) 한때 0.365%p까지 뛰어올랐다. 현재는 안정을 찾았지만, 정치적 리스크에 민감한 CDS지표 특성상 급등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

▲2016년 달러 인덱스  (자료=메리츠증권)
▲2016년 달러 인덱스 (자료=메리츠증권)

환율 이러다 1450원 가나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정치 불안을 이유로 ‘원화 약세’ 의견을 앞다퉈 제시하고 있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강달러 압력으로 원·달러 환율은 1400원 초반에서 하방 경직적 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라며 “탄핵 정국 전개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으로 달러화 수요 우위는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2016년 박근혜 정권 퇴진 당시 사례를 돌아보면 최초 언론보도부터 퇴진까지 약 46일이 소요됐다. 현재 날짜에 단순 대입하면 2025년 1월 18일을 전후해 상황이 진정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1월 20일이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앞으로의 강달러 시기에 원화 절하폭은 다른 통화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의 외환시장 한 관계자는 “정치적 불안정성이 이어지면 한국은행이 환율에 개입하더라도 외국인 이탈로 그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며 “원·달러 환율이 1450원 대에 도달할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언급했다.

국내 증시 안갯속 장세 우려

여의도 증권가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2016년 당시에는 탄핵안 표결부터 헌법재판소 인용까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며 약 6개월 만에 관련 절차가 모두 끝났다”며 “탄핵 절차가 진행된 뒤 한 달여 만에 지수가 안정됐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 지수 상승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증권가는 외국인 ‘엑소더스’ 징조가 이미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4일 비상계엄 종료 이후 외국인이 국내 금융주 물량을 대거 정리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다른 애널리스트는 “‘코리아 밸류업’ 기대감으로 외국인이 유입된 대표적 섹터인 금융주에서 먼저 반응이 나타난 것”이라며 “정치적 리스크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출이 단계적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우호적 거시 경제 환경도 정치적 불확실성의 여파를 키우고 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2016년은 경기 선행지수가 바닥을 확인한 뒤 올라가고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오던 시점이었지만, 지금은 수출 지표가 꺾이고 있고 ‘트럼프 2.0’으로 대외 경기 예상도 까다롭다”며 “정부가 재정·통화 등을 동원한 경기부양책을 내놔야 할 시점에 정치적 사안이 이를 압도하면 외국인의 불안감은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적 흐름이 우수한 기업마저 안심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정치적 리스크 확대로 펀더멘털보다 수급 요인이 우위를 점하는 국면이 됐다는 얘기다. 한 애널리스트는 “국내 증시를 향한 부정적 컨센서스를 고려하면 펀더멘털이 좋은 기업이라도 해당 기업 주가만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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