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의 정치원론] 계엄군 병사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입력 2024-12-09 19:01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서울 한복판서 벌어진 야만의 시간
국민 희생으로 일군 민주터전 훼손
공감능력 갖춘 지도자 나와야할 때

계엄군 병사도 존엄한 인간이다. 대통령, 국방장관, 계엄사령관과 마찬가지로 존엄한 인간이다. 명령을 내리는 직책과 명령을 받드는 직책의 차이는 있지만, 똑같은 인간이다. 그러므로 명령자는 하급 병사라도 로봇이나 소모품처럼 취급하지 않고 인간으로서 어떤 마음을 가질지 헤아려야 한다. 그 마음을 헤아리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 공감 능력 제로의 사람은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

병사를 물건 다루듯 한 옛날이 있었다. ‘삼국지’, ‘일리아스’ 등 흥미 위주의 역사소설은 물론이고 사실 위주의 진지한 역사서나 기록물을 봐도 지도자들끼리 벌이는 전쟁과 전투에서 병사는 그저 집합적 숫자에 불과했다. 병사 각각이 고귀한 인간이란 개념은 없고, 지도자의 변덕스럽고 충동적인 명령으로 왜 그런지도 모르며 우왕좌왕 움직이고 무더기로 죽기도 하는 하찮은 소모품이 병사였다. 지도자가 병사의 마음을 헤아리는 대목이 간혹 나오지만, 이도 사기를 높여 이기려는 전술 차원에서였다. 신권(神權), 군권(君權)이 압도하고 인권(人權), 민권(民權)은 고개를 내밀기 힘들던 야만의 옛 시대라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야만의 시대는 민주공화정이 출범한 1948년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특히, 외침(外侵) 방어도 아닌 정치적 이유로 발동된 비상계엄은 계엄군 병사를 참으로 비참한 존재로 전락시켰다. 1948년 여순 사건, 1960년 4·19 혁명, 1961년 5·16 쿠데타, 1972년 10월 유신,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시해, 1980년 5·17 신군부 쿠데타 등 역사의 고비마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이때 동원된 수많은 병사는 명령만 따르는 로봇이었다. 외부의 적도 아닌 내부 구성원에게 이유도 잘 모르며 명령대로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다. 징집·차출된 그들에게 다른 방도가 있었겠는가. 그들은 감정도 없는 물건처럼 취급받으며, 국민을 탄압하는 도구가 되었다. 얼마나 큰 자괴감에 시달렸겠는가.

그 야만의 시대가 일주일 전 잠시 대한민국에서 되풀이되었다. 도무지 그 동기를 알 수 없고 명분도 아리송한 비상계엄이 느닷없이 선포되며 최정예 특수부대 병사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은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국회, 선관위 등으로 실려 갔다. “대북 작전으로 알고 나섰는데 내려보니 국회였고, 비무장 민간인을 상대로 한 작전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야 알고 자괴감이 들었다”라고 한다. 그들은 “군인을 그만두고 싶다,” “국가에 배신감이 든다”라고도 토로했다. 반란군, 반역자 같은 욕까지 들으며 굴욕감에 치를 떨었을 계엄군 병사들은 대통령 등 명령자의 안중에는 영혼 있는 인간도 아니었다. 그나마 비상계엄이 곧 해제되었기 망정이지, 자칫 1980년 계엄군 병사처럼 오랫동안 내적 수치감과 공적(公敵)으로서의 모멸감을 동시에 느끼는 운명에 빠질 뻔했다.

민주주의, 공화주의, 법치를 작동 원리로 삼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번 계엄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오랜 세월의 굴곡과 시련을 거치며 민주공화국으로서 터전을 일궈왔다. 수많은 국민의 용기, 노력, 희생이 있었던 덕이다. 그 이면에 계엄군 병사들의 눈물도 있었다. 그들은 몇몇 지도자의 야욕을 위해 이용되고 버려진 역사의 희생자였다. 힘든 역사 과정을 거쳐 간신히 일군 터전을 파괴할 뻔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충동적 감정과 오판 속에 존귀한 인간으로서의 계엄군 병사들이 고려 요인으로 조금이라도 들어있었을까?

요즘은 집합적 대중사회를 거쳐 분산적 탈대중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만큼 주체로서 각 개인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런 시대엔 지도자가 혼자 결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장기판 졸처럼 쉽게 여기며 부려선 곤란하다. 지금은 명령 받드는 사람들에 감정이입을 하고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게 지도자의 매우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시대다. 이 덕목이 없으면 명령이 잘 수행되지도 않는다. 이번에 동원된 계엄군 병사들도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았기에 명령 수행에 미적지근하지 않았던가.

병사뿐이 아니다. 경찰, 공무원 등 공적 명령을 받드는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번 중대 사태에서 이성과 거리가 먼 행동으로 자폭하다시피 했다. 거기에 덧붙여, 계엄령에 동원된 병사, 경찰, 공무원 등의 마음을 헤아리는 감성에서도 큰 결격 사항을 드러냈다. 앞으로 국가를 이끌 최고 지도자는 달라야 한다. 명철한 이성과 함께 공감적 감성도 갖춘 지도자가 나오길 기대해 본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尹 비상계엄 선포는 통치행위…어떻게 내란 되나”
  • 한동훈, 尹 제명·출당 착수…윤리위 긴급 소집
  • ‘입시 비리·감찰 무마’ 조국, 대법서 징역 2년 확정…의원직 상실
  • 내년 공공주택 ‘25만가구+@’ 공급될까… 3기 신도시 본청약·신축매입 확대 속도[종합]
  • 디지털헬스케어 토지는 비옥하지만…수확은 먼 길 [빗장 걸린 디지털헬스케어]
  • 비트코인, 美 CPI 호조에 반등…10만 달러 재진입 [Bit코인]
  • K-제약바이오 美혈액학회’서 신약 연구성과 발표…R&D 경쟁력 뽐내
  • 새벽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오류 소동…현재는 정상 운영 중
  • 오늘의 상승종목

  • 12.12 15:25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42,499,000
    • +2.63%
    • 이더리움
    • 5,556,000
    • +6.48%
    • 비트코인 캐시
    • 790,000
    • +6.97%
    • 리플
    • 3,452
    • +3.66%
    • 솔라나
    • 326,200
    • +4.62%
    • 에이다
    • 1,643
    • +13.94%
    • 이오스
    • 1,613
    • +9.06%
    • 트론
    • 412
    • +7.01%
    • 스텔라루멘
    • 629
    • +6.43%
    • 비트코인에스브이
    • 97,100
    • +8.8%
    • 체인링크
    • 40,480
    • +27.66%
    • 샌드박스
    • 1,158
    • +18.53%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