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차주 10명 중 3명 빚 갚는데 소득 100%
다중채무자 대출 잔액 1년 새 10조 원 불어나
'빚 돌려막기' 수요 확대되는데 대출 문턱 높아져 우려
금융기관 세 곳 이상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들의 빚이 최근 1년 새 10조 원 가까이 불어났다. 갚아야 할 빚이 소득 수준을 넘어선 가계대출자는 150만 명을 웃돌았다. 문제는 금융사들의 연체율이 상승 전환되면서 ‘빚 돌려막기’도 한계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데 있다. 탄핵 정국 장기화 조짐에 금융사들이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출 문턱을 더욱 높일 것으로 예상되면서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는’ 취약차주의 사정이 더욱 나빠질 수 밖에 없어서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다중채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 2분기 기준 753조8000억 원을 기록했다. 최근 1년 새 9조9000억 원 증가한 것으로 역대 2분기 중 최고 수준이다. 빚을 빚으로 돌려막은 이후 갚지 못한 돈도 급증했다. 같은 기간 다중채무자 연체액은 13조9000억 원을 기록했다. 3분기와 4분기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의 빚은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벌어들인 돈 대부분을 빚 상환에 쓰고 있지만 이자를 내기도 버거워진 차주도 크게 늘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전체 차주 1972만 명의 대출 잔액은 2분기 기준 1859조300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845조7000억 원에 견줘 13조6000억 원 늘었다. 이 중 157만 명은 한 해 평균 소득 전부를 대출이자, 원금을 내는 데 썼다. 1년 동안 벌어들인 소득의 70% 이상을 대출 상환에 쓴 사람은 270만 명이 넘는다.
다중채무자는 전체의 13.8%에 달하는 62만 명이 한 해 동안 번 소득을 모두 빚 갚는 데 쓴 것으로 집계됐다. 연 소득의 70% 이상을 부채 상환에 쏟는 다중채무자는 117만 명으로, 전체의 25.9%에 달했다. 같은 기간 다중채무자 수는 총 452만 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 448만 명보다 4만 명(0.89%) 늘었다.
이들 중 신용과 소득수준이 낮은 취약차주의 상황도 나빠졌다. 다중채무자이면서 소득 하위 30% 또는 신용점수 664점 이하인 취약차주의 수는 올 2분기 129만 명으로, 1년 새 126만 명에서 3만 명(2.4%)가량 증가했다. 이들의 대출 잔액 역시 같은 기간 95조2000억 원에서 95조4000억 원으로 2000억 원 확대됐다.
1년간 번 돈의 7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는 취약차주는 47만 명으로 전체 취약차주 129만 명의 36.4%였다. 소득과 신용 수준이 모두 낮은 차주 10명 중 3명가량이 연 평균 소득의 절반 이상을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다는 뜻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대출 장벽에 법정 최고금리에 맞먹는 이자를 감내하며 카드대출에 손을 대는 차주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카드사 현금서비스(단기대출) 잔액은 10월 말 기준 6조8355억 원으로, 전년 말 6조6417억 원보다 1938억 원(2.92%) 늘었다. 카드론(장기대출) 잔액은 같은 기간 38조7613억 원에서 42조2202억 원으로 3조4589억 원(8.92%) 불었다.
카드론과 현금서비스는 은행권에서 대출받지 못하는 저신용자의 ‘급전창구’로 꼽힌다.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로 분류되는 보험계약대출 역시 올 9월 말 기준 70조7000억 원으로, 지난해 역대 최대 수준인 71조 원에 근접했다.
은행, 보험ㆍ카드사 등 금융사 연체율이 모두 상승세를 보이면서 향후 '빚 돌려막기'도 어려워질 전망이다. 금융사가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출 문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특히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면 더욱 보수적으로 대출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올 9월 말 국내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36%로 전월 말(0.40%)보다는 내려갔지만 2022년 9월 말 0.19%과 지난해 9월 말 0.35%보다는 올랐다. 같은 기간 보험사 대출채권 연체율도 0.62%로 1년 새 0.15%포인트(p) 상승했다. 카드업권 연체율은 올 상반기 말 1.69%로 전년 말 1.63%보다 0.06%p 악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