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우문현답] ‘비혼 출산’, 흔들리는 인륜지대사

입력 2024-12-1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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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명예교수·사회학

서구에 비해 국내인식 아직 낮지만
혼외 출산 동의율 예전보다 높아져
선택 존중하고 새생명 지원 넓히길

배우 정우성 씨가 모델 문가비 씨가 낳은 아들을 자신의 친자(親子)로 인정하면서 비혼 출산 이슈가 미디어와 SNS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잠시 설왕설래가 이어지다, 남자 측이 청룡영화제 자리에 나와 공식 사과와 함께 자신의 아들을 책임지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날개 없이 추락할 것만 같았던 배우 정우성 씨의 이미지는 일단 동정표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순식간에 떠오른 비혼 출산 이슈는 간단치도 만만치도 않음이 분명하다. 최근 만난 30대 초반의 가족 연구자는 정우성 씨 개인의 민망한 사생활이 비혼 출산 이슈로 포장되는 상황이 불편하다고 했다. 원래 방송인 사유리 씨가 ‘쏘아올렸던’ 비혼 출산의 진정성 내지 참 의미가 왜곡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매체를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남자는 처음부터 그 여자와는 결혼 의지가 없었고, 심지어 다른 여성(들)과 만나고 있었다는 정황도 나타났으니, 비혼 출산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피임을 했어야 마땅했다는 것이다.

반면 여자는 결혼 의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던 만큼 우리가 익히 봐오던 미혼모 아니냐는 의견과, 남자 쪽에서 결혼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음에도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리고 출산한 것은 주체적 선택으로 보아야 하리란 견해가 맞서고 있다 했다. 와중에 상대 남자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여자를 꽃뱀으로 몰아가는 선정적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남자만 공식석상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변명하고 만회할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의 불공정성을 지적하는 의견과 함께, “도대체 어떻게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 댓글에는 ‘좋아요’가 줄줄이 달렸다고 한다.

새삼 비혼 출산이 이슈가 된 배경에 한국의 초저출생이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비혼 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멕시코로 무려 70.4%를 기록하고 있고, 다음으로 프랑스가 62.2%, 스웨덴이 55.5%로 뒤를 잇고 있다. 영국은 10명 중 5명, 미국은 10명 중 4명의 신생아가 혼외 출산이다. 반면 한국과 일본의 비혼 출산율은 각각 4.7%, 2.4%로 OECD 국가 평균 41.9%와 큰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럽에서 비혼 출산이 많은 이유는 법적 부부의 출산이든 동거 커플의 출산이든 심지어 동성부부의 대리모 출산이든 모든 형태의 출산에 대해 차별 없이 국가가 지원을 해주고 있고, 비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허용적이기 때문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남미의 경우는 그곳 특유의 가족제도와 관련이 있다. 남미에선 할머니에서 엄마를 거쳐 딸로 이어지는 여성중심의 가족공동체가 세대 간 호혜적 협력을 통해 자녀 양육과 노후 부양을 책임진다. 할머니는 손자녀를 키워주고 딸은 엄마의 노후를 돌봐주는 식이다. 가톨릭이 강한 국가인 만큼 대모(代母)들이 혈연관계 못지않은 도움의 손길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미국의 비혼 출산 상황도 흥미롭다. 최근 미국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가족유형으로 SMBC(Single Mother By Choice의 약자로, 번역하면 ‘선택적 싱글맘’이 될 듯)가 지목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전문직 고학력 여성을 중심으로 비혼 출산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그 뒤에 친정엄마의 열렬한 지지와 지원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저학력 하류층 여성의 비혼 출산에도 가속이 붙고 있는데, 과거 혼전 임신이 곧바로 결혼으로 연결되던 관행을 깨고, 지금은 아이는 환영하지만 남편은 ‘노 생큐’라는 분위기가 우세해진 결과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이 남의 일이 아님을 확인하는 통계가 나왔다. 비혼모이든 미혼모이든 혼외 출산이 아직은 소수이고, 사회적 인식 또한 우호적이라 보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에게도 의미심장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놓쳐선 안 될 것 같다. 지난 11월 말, 서울에 사는 30대 비혼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동의하는지” 물은 결과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 여성 49.0%, 남성 47.0%로 나타났다. 물론 동의한다고 해서 곧 실행에 옮긴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부모 세대 입장에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결과임은 분명하다. 심지어 남성과 여성의 동의율이 비슷한 수준이란 사실도 놀랍다.

이제 결혼과 출산 모두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의 자리에서 내려와, 개인별 선택이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범주로 편입되고 있다. 개개인의 선택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 모두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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