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원장의 고민

입력 2024-12-1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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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검사는 잘 마쳤습니다. 다음 주에 결과 들으러 오세요.” “다음 주에는 못 오는데요.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해외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어요. 졸업하고 40년 만에 가는 여행이라.”

환자는 2주 뒤에나 올 수 있다고 했고 병의 위중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듯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바빠진 건 나였다. 초음파 영상만으로도 유방암이 확실했던 터라 조직검사 결과는 환자를 의뢰하는 데 필요할 뿐이었다. 다음 주에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대학병원으로 보내려 했는데 환자가 다음 주에는 여행을 가신다고 하니, 요즘과 같은 의정 갈등 상황에서 진료가 미뤄지면 수술도 덩달아 미뤄질 수 있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미 비행기표까지 끊고 숙소비까지 다 지급한 여행이기에 가지 말라는 말은 못 했다. 거기다 40년 만에 가는 고교 동창 여행이라니. 가지 말라고 하면 환자는 무슨 병인데 그러느냐, 암이라도 된다는 거냐고 물을 것이 뻔했다. 물론 나는 암을 확신했지만, 조직검사 결과라는 공식 보고가 나오기 전까지는 함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을 가지 말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잡아놓고 여행을 가시라고 하면 어떨까 싶었다. 돌아오자마자 나한테 와서 조직검사 결과지와 의뢰서를 들고 예약된 시간에 대학병원을 가면 그나마 좀 빠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럴 경우 환자는 본인이 큰 병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가게 되는 거라 40년 만에 가는 고교 동창들과의 해외여행이 불안과 우울로 가득 찰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미리 대학병원에 예약하라고도 말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도 물었는데 미리 알리는 것은 좋지 않겠다고 한다. 그 기간만이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잠들기 전 그러면 환자 모르게 내가 직접 대학병원에 예약해 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맘 편안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고 바로 대학병원에 가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에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그런데 환자가 예약하든 주치의가 예약하든 일단 예약하면 환자에게 예약 문자가 가지 않나. 그러면 결국 환자가 알게 되는 거네. 다시 원점이네. 아, 내일 다시 생각하자.’ 혼자 안절부절못한 밤을 보냈다.조석현 누가광명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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