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내부통제 미흡으로 인한 사소한 금융사고에도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시장 불안이 증폭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 “금융협회는 각종 금융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회사들의 내부통제시스템을 다시 한번 꼼꼼히 챙겨봐 주시기 바란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가결된 이후 열린 ‘금융상황 점검회의’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합동 리스크 점검회의’에서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했던 발언 중 일부다. 전날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회의에서 한 말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12·3 계엄사태가 쏘아 올린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되자, 금융위·금감원은 8년 전처럼 대내외 신뢰도 잡기에 나섰다. 그때의 경험이 교훈이 됐던 것일까. 더 신속히 초기 대응에 나섰다. 4일부터 이날까지 매일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회의’를 열었고, 점검 태스크포스(TF)를 신설,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에 안간힘을 썼다. 김 위원장은 계엄 사태 후 첫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금융시장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는 작은 사고나 사건도 시장에 불안을 증폭시킬 수 있는 만큼 내부통제시스템을 체크해 달라”고 금융협회에 당부했다.
금융사들도 주말을 반납하고 비상 대응 체제에 돌입했다. 각종 시장 지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리스크 차단에 총력을 다했다. 주요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들은 대외신인도 하락을 막기 위해 서한까지 보내며 외국인 투자자 달래기에 나섰다.
그러나 전날 저녁 이 같은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터졌다. 금감원 정기검사 결과 KB국민은행에서 147억 원 규모의 금융사고 총 3건이 적발된 것. 앞서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 경남은행 등에서 터진 연이은 금융사고로 신뢰도가 이미 바닥을 찍은 상태다. 무엇보다 국민은행은 자산, 예금 점유율, 이자이익 등에서 압도적인 국내 1위 은행이라 더욱 뼈아프다.
금융권 신뢰 회복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우리금융지주의 부당대출 관련 검사 결과를 내년 초 발표하겠다고 했다. 금융사고 방지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당부했던 2016년 당시 금융위원장이 현재 전임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로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또 한 번 연출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과 금융사들이 목이 터질 듯 외치는 ‘내부통제 강화’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보여줘야 할 것은 ‘자체 회의 건수’만이 아니다. 8년 전과 똑같이 반복해 내뱉는 “잘 관리하겠다”라는 메시지만으로도 부족하다.
최고경영자(CEO) 책무 설정 아래 자체 점검으로 금융사고 의심 정황을 조기에 발견해 뿌리 뽑고, 제때 감독당국에 보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금융당국은 금융사 내부통제 관리에 빈틈이 없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