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트럼프 태풍 앞에 기업만 알몸으로 서야 하나

입력 2024-12-1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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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인협회가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국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35차 한미재계회의 총회’에서 한국 기업의 활동 안정성을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기반한 통상 체제를 유지하는 일관성 있는 정책도 요청했다. 미국상공회의소와 함께 한미 양국 정부에 건의하는 공동선언문 형식으로 발표됐지만 내달 임기 개시를 앞둔 ‘트럼프 2기’ 행정부를 향해 읍소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보호무역 깃발을 흔드는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던 우리 기업들은 계엄·탄핵 정국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민관 협력으로 통상 전력을 강화해 트럼프 변수에 대처할 국면이 아니다. 기업들은 알몸으로 트럼프 태풍 앞에 서게 됐다. 이런 참사가 없다. 한미 FTA 재협상,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칩스법) 개정, 보편 관세 가능성 등의 악재가 줄지어 밀려오는 상황 아닌가.

수출업계의 애간장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공동선언문은 “양국은 기술 산업을 겨냥한 차별적 법안을 포함한 무역장벽을 제거하고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비즈니스·규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인들의 답답한 속내를 이런 문안에서 읽지 못한다면 눈이 어두운 것이다.

한경협은 총회에 앞서 역대 최대 규모의 민간 사절단을 꾸렸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40여 명이 에반 그린버그 미한재계회의 위원장(처브그룹 회장)을 비롯한 미국 대표 기업인들과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사절단은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와 교류한 뒤 트럼프 1기 백악관 비서실장 등을 만난다고 한다. 한국은 지난해 대미 최대 투자국(215억 달러)이다. 첨단산업 공급망의 핵심 파트너이기도 하다. 하지만 트럼프 진영이 이를 알지 못하거나 묵살하면 유효한 카드가 될 수 없다. 그러니 트럼프 인맥을 찾아 떠도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대미 경제·통상외교가 중단된 것은 아니다.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전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과 25분 화상면담을 통해 “우리 경제 시스템은 굳건하고 긴급 대응체계도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옐런 장관도 화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향후 경제·통상 관계를 좌우할 열쇠는 트럼프 진영이 쥐고 있고, 트럼프 당선인은 동맹을 가치가 아니라 거래 관계로 파악한다. 이 긴박한 시점에 기업들이 전면에서 백방으로 뛰는 형국이니 이런 황당한 일도 없다.

국내 정정 불안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 차기 선거 시간표를 노려보는 여야는 물론이고 행정부도 제정신 차리기가 쉽지않다. 이 판국에 경제 돌볼 여력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무너지면 국가 미래는 생각보다 훨씬 절망적이고 암담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 기업이 ‘원팀’으로 대응할 묘수를 찾아야 한다. 정상외교에 나선 경쟁국들과 대등하게 겨루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기업들만 알몸으로 나서도 좋은 국면은 아니다. 행정부는 최대한 힘을 내고 국회 또한 적극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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