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배의 금융의 창] ‘외환위기’의 교훈 새겨야 할 때

입력 2024-12-1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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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ㆍ금융의 창 대표

환율·주가·부동산…경제 다중위기
대외신뢰 잃으면 자금이탈 순식간
신속한 금융시장 안정대책 나와야

우리 경제는 현재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내수가 오랜 시간 침체를 지속하고 있으며, 버팀목이 되어 왔던 수출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정책으로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얼마 전 한국은행은 2024년 성장률을 2.2%로 하향 수정 전망하고, 2025년에는 1.9%로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하였다. 하지만 이 전망치는 트럼프 정부의 강화된 보호무역 기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고, 12월 들어 불거진 국내 정치 불안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금융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지수가 급락하고, 반등하던 부동산시장의 거래도 실종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997년 말 외환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당시의 외환위기는 본질적으로 경제, 산업,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여러 내재적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노출되면서 금융대란과 국가 경제 파산으로까지 연결된 총체적인 위기였다. 하지만 대외 신뢰도를 잃으면서 시작된 외화 이탈이 위기의 뇌관이었다. 1997년 들어서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우성, 삼미 등 건설업 그룹들이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정부가 글로벌 시장규율에 맞지 않게 대처하는 바람에 뇌관을 터트렸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동방페레그린증권 인수합병(M&A)에 대한 정부의 대처다.

동방페레그린증권은 1992년 당시 신동방그룹이 홍콩의 페레그린과 합작한 증권회사다. 외환위기 직전 동방페레그린증권이 당시 대농그룹의 미도파 인수를 시도할 때 정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이를 저지했다. 그 사이 대농그룹은 도산 위기에 처해 부도방지협약 대상에 편입됐고, 다시 성원그룹이 동방페레그린 주식을 매입할 때는 정부에서 수수방관했다. 이에 외국인 동방페레그린 사장은 “글로벌 게임룰을 모르는 한국 정부와 상대하지 말라. 한국 경제는 금융뿐만 아니라 실물적인 기초도 문제투성이다”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국제금융계에 배포했다. 이에 한국이 어려움을 겪을 것을 감지한 홍콩 금융기관에선 한국계 금융기관에 대한 신규대출을 자제하고, 기존 대출의 상환 연기를 거부하면서 한국에서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였으나 외화유동성 부족으로 결국 국가부도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물론 외환위기 때와 현재의 경제적 상황은 확연히 다르고, 다행히 현재 경상수지 흑자기조가 지속되고, 최근 줄어들었지만 축적된 외화보유액이 아직 여전하다. 따라서 당장 외환위기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지난 8월 이후 외국인 증시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다가, 10월 주가조작에 대한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정부 조치가 취해지자, 외국인 투자자금이 주식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그런 데다 계엄과 탄핵정국에서 취해지고 있는 조치들이 국민 전체와 외국 투자자의 생각에 반하면서 외국인 자금들이 대규모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만일 경상수지가 줄어들고,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이 계속 확대되면 제2의 외환위기를 전혀 배제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현재 실물경제는 세계 10위권에 있지만 금융시장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즉, 실물경제는 선진국에 해당하지만, 금융시장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다. 조그만 대내외 위기에도 외국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금융시장은 쉽게 휘청거린다. 굳이 외환위기가 아니더라도 지금과 같이 상황이 악화한 상태라면 어느 순간 다른 계기로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 서둘러 책임 있는 정치인과 당국이 혼돈의 상황을 바르게 수습하여 글로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 글로벌 게임 규정을 따르지 않아 외환위기가 가속된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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