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등 후발주자과의 격차 좁혀질 수도"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됨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즉시 정지되면서 반도체 업계서 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과 중국 등 반도체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국가 신뢰도와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법안도 뒤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14일 반도체 업계에서는 대통령 탄핵안 통과로 인해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면 몇 개월 동안 대통령의 업무는 권한대행이 맡게 될 것”이라며 “그 사이에 반도체 산업 위축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국 기업의 투자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업의 투자도 적기를 놓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 기업에 대한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 지급도 늦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더욱이 내년 반도체 보조금 지급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백지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앞서 미국 정부는 삼성전자에 64억 달러(약 9조1600억 원), SK하이닉스에 4억5000만 달러(약 6400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및 첨단 패키징 시설을,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생산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장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투자가 적기에 이뤄지지 못하면 중국 등 후발주자들과의 격차가 좁혀질 우려도 있다.
이 교수는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로 반도체 시장에서 고점을 달리고 있는데 잠시 주춤할 수도 있다”며 “경쟁업체인 미국 마이크론과 중국의 범용 메모리 제조 기업들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을 빠르게 쫓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도 안심할 수 없다. 현재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는 대만 TSMC 등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인데, 국내 정치가 흔들리며 제대로 된 주문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에 계류된 법안도 처리가 요원하다. 국회에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포함한 ‘반도체 특별법’이 계류돼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반도체 패권경쟁이 심화하며 위기감을 느낀 여당이 당론 발의한 것인데, 야당에서도 세부적인 내용을 제외하고는 큰 이견이 없어서 업계에서는 법안 통과에 대한 기대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가 탄핵안을 통과시키며 이 법안은 당분간 논의 대상에서 뒤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대통령의 권한은 곧바로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이후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 넘어가 심리를 받게 된다. 국회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결정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차기 대선 준비에 돌입할 수 있다.
반도체 특별법 뿐 아니라 다른 법안도 마찬가지다.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과 정성호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법률안도 당분간 논의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는 이 개정안이 발의되기 전부터 큰 관심을 보여왔다. 중국의 기술 추격과 미국의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을 지원할 법안으로 주목받아 왔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시설 투자는 1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법인세를 감면해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적자를 거둔 기업은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박 의원의 개정안은 투자의 미공제금액을 환급세액 개념으로 보고, 환급받거나 제삼자에게 양도가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수도권 과밀 억제 지역에서 시설을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조세 감면이 배제된다. AI 관련 시설 투자가 수도권 지역에 주로 이뤄지는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정 의원의 개정안은 국가전략기술에 AI를 추가하고, AI 관련 투자를 조세 감면 배제에서 제외해 AI 관련 시설투자를 활성화하자는 내용을 포함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이상 여당에서는 서로에게 책임을 따지고, 야당은 대선 준비에만 신경 쓸 것”이라며 “이런 정치 상황이 터질 때마다 급한 민생 법안은 늘 뒤로 밀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