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부는 내년 2월까지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제출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이를 위해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기술작업반이 2035년 감축 목표 경로를 검토 중이며, 이후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종 목표를 설정할 예정이다. 전 세계가 탄소 중립과 저탄소화를 강조해왔지만, 국가 간 또는 단체 간의 분열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최근 막을 내린 COP29에서도 기후재원에 대한 가까스로의 합의만 이뤄졌을 뿐, 모든 참가국이 동의한 포괄적 합의문은 발표되지 못했다. 또한, 기후 회담에 반대하는 반기후 회담 운동까지 등장하며 국제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의 탄소 중립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탄소 중립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이행하고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필수적 과제다. 탄소중립기본법 제3조는 “미래 세대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현재 세대가 져야 할 책임”을 기반으로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과 녹색성장을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당위성만으로도 탄소 중립을 달성해야 할 이유는 충분할 수 있지만,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편익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탄소 경쟁력, 즉 그린 경쟁력은 국가적 차원의 핵심 경쟁력 요소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주요국의 환경·통상 규제가 강화되면서 제품 생산과 공급망에 내재된 탄소 배출량이 수출 경쟁력의 중요한 지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2023)에 따르면, 국내 배출권거래제 가격과 수출에 내재된 탄소 배출량이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 시행 이후 대EU 수출이 산업별로 0.5~6.9%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사한 규제가 다른 주요국으로 확대된다면 그 영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또한,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RE100 이행과 탄소 감축 계획을 수출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어, 수출 수요가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저탄소 산업 생태계를 갖추지 못할 경우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입과 국내 설비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그린 경쟁력은 한국이 반드시 확보해야 할 필수 경쟁력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한국무역협회의 설문조사(2023)에 따르면, 85%의 수출기업이 기후위기가 경영 및 수출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지만, 실제로 기후변화 대응을 하고 있다고 밝힌 기업은 10%에 불과했다. 또 다른 조사(2024)에서는 제조 수출기업 중 8.7%만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절반 이상의 기업이 재생에너지 이용 계획조차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대응 부족은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11월에 발표된 기후변화 대응지수(CCPI)에서 한국은 64개국 중 하위 5위를 기록했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1.5도 경로와 부합하지 않으며, 화석연료 퇴출 의지 부족과 재생에너지 도입 부진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저탄소 전환을 위한 산업 생태계 구축에는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를 뒷받침할 재정적 기반이 턱없이 부족하다. 대표적인 기후대응기금은 2024년 지출 계획 기준으로 약 2.3조 원으로, 이는 GDP의 0.1%에 불과하다. 기후변화 대응 프로그램 예산과 광역지자체 예산을 모두 합쳐도 GDP의 1%를 넘지 못한다. 민간 자본 역시 재생에너지보다 여전히 화석연료에 더 집중되어 있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출기업들은 비용 부담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으며, 설비 교체와 연구개발을 위한 재정 지원을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지목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와 정책의 일관성 부족이다. 헌법재판소 판결에서도 지적되었듯, 한국은 중장기적인 탄소 감축 목표가 법제화되지 않아 기후 정책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5년 주기의 탄소 배출량 목표를 12년 전에 법률에 반영하는 영국과 대조적이다. 에너지 정책 또한 정권 교체 때마다 크게 변동돼 정책 추진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한국은 저탄소 전환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컨대, 한국의 공적 금융이 해외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비율은 G20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또한, 지난 6월 OECD에서 논의된 수출신용협약 개정안(공적 금융 지원 사업이 파리협정 목표에 부합해야 한다는 내용)에서도 튀르키예와 함께 반대표를 던져 협상을 결렬시켰다.
투자는 불확실성에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저탄소 전환을 위한 설비나 기술 개발처럼 장기적이고 대규모의 투자는 예측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이뤄지기 어렵다. 결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은 기업 신뢰를 저해하고 장기적 투자 의지를 꺾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고 국내 기업이 글로벌 경제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장기적인 정책 방향성을 확립하고 이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