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인도네시아 뇌물' 사건 발 위기에 휩싸였다. 불안정한 업황으로 실적이 악화한 가운데 현대건설이 기회의 땅으로 주목하던 인도네시아 시장에서의 활동이 한동안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수백억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할 가능성도 있다.
18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는 인도네시아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와 관련해 현대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현대건설 임직원이 인도네시아 찌레본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민원을 무마할 목적으로 순자야 푸르와디사스트라 전 찌레본 군수에게 6억 원가량의 뇌물을 제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건설이 2015년 수주한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은 자바섬 자카르타시에서 동부방향으로 200km 떨어진 자바 해안에 1000MW급 석탄화력발전소와 500kV 변전소를 확장하는 것으로 현대건설의 시공금액은 6774억 원 규모다.
2016년 3월 착공할 예정이었으나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 반대로 공사가 미뤄졌고 이 과정에서 금품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면 국제뇌물방지법에 따라 처벌 받는다. 이 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뇌물방지협약에 따라 1998년 제정됐다.
국내 검찰의 수사는 인도네시아 당국의 요청으로 시작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현지보다 현대건설 본사가 있는 한국에서 수사·처벌이 이뤄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부패방지위원회(KPK)는 2018년 10월 순자야 전 군수를 뇌물수수와 매관매직 혐의로 체포했으며 현지 법원은 2019년 5월 징역 5년, 벌금 2억 루피아(한화 약 1700만 원)를 선고한 바 있다. 하지만 현대건설 관계자에 대한 처벌은 없었다.
검찰의 수사결과를 예단할 수 없지만 법조계에서는 뇌물을 받은 사람이 처벌됐다는 점에서 뇌물을 준 쪽의 혐의도 인정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견이다.
만약 현대건설이 국제뇌물죄로 처벌받는다면 인도네시아 시장에서의 신규 수주 등이 상당 기간 제한될 수 있다.
송기호 변호사는 "검찰의 현대건설에 대한 수사는 인도네시아에서의 문제와 관련해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라며 "국제뇌물은 국제사회에서 상당히 중대하고 심각하게 다루는 사안이라 유죄가 되면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수주 제한 등을 포함한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찌레본 화력발전소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추가 수주가 없었지만 수많은 사업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던 곳이다.
현대건설이 지난해 6월 뉴스룸에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기회의 땅’, 현대건설이 인도네시아를 주목하는 이유'란 제목으로 올린 글을 보면 이같은 사실이 잘 드러난다.
현대건설은 1973년 자고라위 고속도로 착공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총 27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며 이를 토대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동반자가 될 것이란 기대를 밝혔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약 2억8000만 명의 인구, 높은 생산 가능 인구 비율, 연 5%대의 경제성장률 등을 근거로 성장 잠재력이 높다는 평가도 했다.
국내에서의 처벌과 함께 인도네시아 환경단체가 현대건설을 미국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우려도 있다. 미국에서 영리 활동이나 금융거래를 했다면 미국 해외부패방지법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설명이다.
2019년 국정감사에서 찌레본 뇌물 문제를 제기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일본 마루베니 종합상사는 인도네시아 타라한 화력발전사업 등에서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미국 부패방지법을 적용 받아 약 90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업황이 워낙 안 좋은 데다 실적도 악화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런 일들이 현실화하면 상당한 충격이 될 수밖에 없다. 현대건설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512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감소했다. 3분기만 놓고 보면 영업이익이 53.1% 줄었다. 올해 1분기 3% 안팎이던 영업이익률은 2분기부터 1%대로 떨어졌다.
전반적인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실적 흐름이 급반전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기실사지수(CBSI)가 지난달 66.9로 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건설업체들도 비관적 시각이 강한 상태다.
현대건설은 윤영준 전 사장과 13년 차이가 나는 이한우 부사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해 인적 쇄신에 나서는 등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뇌물 사건에 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이미 사업을 수주한 뒤 공사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현지 대행사 관계자가 개인적으로 한 일"이라며 "이번 건과 관련해 인도네시아 당국으로부터 회사나 임직원이 기소되거나 별다른 통지를 받은 일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