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와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힘을 합친다면 엄청난 파괴력이 있다고 봅니다.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어요”
한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힘 ‘한동훈 지도부’의 붕괴 후 보수 진영의 전망에 대해 묻자 이같이 말했다. 그 교수는 이어 “권성동 원내대표가 이끄는 친윤(친윤석열)계의 국민의힘이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TK 지역의 소위 ‘찐 보수’라는 사람들도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상황인데…”라고 덧붙였다.
해당 교수와의 통화를 한 다음날 한 전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당 대표직을 내려놓겠다고 밝혔다. 한 전 대표는 국회를 떠나며 지지자들에게 “여러분, 저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여운이 담긴 이 말은 일단 휴식을 취하면서 정치권에 복귀하는 시기를 조율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한 전 대표의 사퇴 발표 후 이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전 대표의 퇴임을 보면서 기시감이 든다. 저와 방식은 달랐지만 나름의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던 그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며 “한 전 대표가 정치에 계속 뜻을 두고 길을 간다면 언젠가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고 적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정치권의 격언처럼 차기 대선 국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라는 현시점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를 맞상대하기 위해 ‘윤석열과의 차별화’를 꾀하는 한 전 대표와 ‘40대 기수론’을 들고나온 이 의원이 보수 주자라는 큰 틀 아래 협력 관계가 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로 보인다.
물론 변수도 존재한다.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리더’의 역할을 맡고자 하는 두 인물이 과연 상생할 수 있을까. 누군가 한 명은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올 텐데, 교통정리가 어떻게 될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한 전 대표와 이 의원의 관계 또한 변수 중 하나다. 이 의원은 당장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한 대표를 향해 “조변석개하는 정치인”, “소통령 행세”라는 표현을 쓰며 비난한 바 있다. 대의를 위해서는 사적인 감정을 접어둔다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좌지우지되는 것도 아니지 않나.
한 전 대표와 이 의원의 세력이 아직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서로가 협력이라는 경우의 수를 배제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리더가 사라진 친한(친한동훈)계 세력은 친윤계가 건재한 국민의힘 내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고, 이 의원이 속한 개혁신당은 여전히 3~4%대의 지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협력이라는 것도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전제조건이 없다면 검토가치가 없는 얘기가 돼 버린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그에 따른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보수 진영은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약 8년 만에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대통령 탄핵의 이유가 ‘내란죄’라는 점에서 8년 전보다 더 큰 위기인 것처럼 보인다. ‘보수의 구원자’는 누가 될까. 한동훈일까, 이준석일까. 아니면 제3의 인물일까. ‘이재명의 민주당’에 대항할 보수의 비책은 무엇일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