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의 미-중 신냉전, 대결과 공존사이] 37. 쫓고 쫓기는 미중 AI반도체 경쟁

입력 2024-12-18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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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첨단 메모리-中 핵심 광물’ 무기化
AI기술, 패권 가릴 게임체인저로 인식

미중 관계가 예측불허의 폭풍전야다. 12월 2일 바이든 행정부의 제3차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방안이 발표되면서 트럼프 2.0을 앞두고 미중 간 무역·반도체 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1차 때는 2022년 10월 자국 기업인 엔비디아와 AMD의 AI 반도체 및 생산장비에 대한 수출통제를 단행했다. 그리고 2023년 미국산 기술이 포함된 반도체 제조장비의 수출을 금지하고, AI와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 수출을 제한한 바 있다.

3차 대중국 반도체 수출 추가 제재안의 핵심은 AI를 개발하는 데 필수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AI 반도체 관련 140개 제재 대상의 중국기업 명단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1차·2차 제재 조치가 반도체 설계·제조·장비기업에 집중되었다면 3차 제재는 AI 반도체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 전반에 걸쳐 중국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1차 AI 가속기의 중국수출 차단에 이어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첨단 메모리인 HBM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도다.

중국, 세계 갈륨 공급 98% 장악

중국은 미국의 3차 AI 반도체 수출통제를 예견한 듯 다음날인 3일 전략물자 수출통제로 즉각 반격에 나섰다. 자국 안보적 관점에서 산업·군사용 이중용도 전략물자의 미국수출을 금지하는 통제 지침을 발표했다. 반도체 소재에 쓰이는 갈륨·게르마늄·안티몬 등 전략 광물자원의 미국수출을 원천적으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특히, 갈륨과 게르마늄은 첨단산업뿐만 아니라 군사장비·첨단무기에도 사용되는 핵심 전략물자다. 예를 들어, 갈륨은 차세대 반도체·레이더·전기차에 사용되고, 게르마늄은 야간 투시경·인공위성용 태양전지·광섬유 통신 등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광물이다. 미국에 대한 전략물자의 무기화를 다시 꺼내들었다.

세계 갈륨 공급량의 98%, 게르마늄 공급량의 68% 이상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 보고서에 의하면, 미국 내 첨단제품에 사용되는 전략물자의 약 6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을 제한하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31억 달러 이상 감소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중국이 전략물자의 무기화를 선제 대응 카드로 사용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실 중국의 즉각적인 반격은 지난 6월부터 준비해 온 것으로 미국의 대중국 제재 강도와 내용에 따라 이미 다양한 보복 시나리오를 마련해 둔 상태다. 이를 대비해 화웨이, 바이두 등 중국기업들도 지난 하반기부터 대량의 HBM 사재기를 시작했다. 미국은 지난 6월부터 중국의 첨단 AI 기술성장을 차단하기 위해 GAA(Gate All Around)와 HBM 추가 규제 작업에 착수했다. GAA는 미래 AI 칩 생산에 필요한 핵심 차세대 기술로 기존 핀펫 공정 대비 고성능·저전력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2022년 세계 최초로 2나노 파운드리 공정에 GAA를 도입했고, 현재 삼성과 TSMC·인텔 3사만 양산이 가능한 상태다. 미국은 GAA 기술이 접목된 3나노 공정 제품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중국에 흘러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GAA와 HBM의 대중국 수출규제 작업이 진행되었고, 지난 9월 첨단 반도체 제조핵심기술을 수출통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임시최종규칙(IFR)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12월 2일 첨단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수출 통제를 포함한 3차 대중국 반도체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경제적 강압 행위를 단호히 반대한다”고 반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12월 2일 첨단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수출 통제를 포함한 3차 대중국 반도체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즉각 “경제적 강압 행위를 단호히 반대한다”고 반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中정부, AI반도체 개발 진두지휘

미국의 대중국 AI 반도체 규제의 목적과 배경은 명확하다.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중국 AI 기술 자립화와 관련 산업 생태계가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대표적 D램 생산기업인 창신메모리(CXMT)가 레거시(범용) HBM 자체 개발에 성공해 양산 준비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아가, 3세대 레거시 모델인 HBM2E 개발에도 이미 착수한 상태다. 무엇보다 중국정부가 컨트롤타워로서 막대한 자금 지원과 함께 AI 반도체 연구와 생산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 정부가 메모리와 SW, 장비 등 AI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해 대기업·중소기업 간 개방형 혁신을 주도하며 2026년 HBM2 양산을 목표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첨단 반도체 기술자립을 위한 정부지원금 규모도 엄청나다. 5월 첨단 반도체 투자기금인 ‘3차 반도체 빅펀드’ 규모가 약 3440억 위안(약 67조8000억 원)으로 AI 반도체 연구개발(R&D)과 장비구입, 공장건설에 집중적으로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AI 반도체가 중국 군사 현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3차 추가 제재를 발표하면서, ‘전쟁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군사용 첨단 AI 반도체 생산능력을 제한하기 위한 수출통제 정책’이라고 그 목적을 명확히 했다.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도 ‘3차 제재는 중국의 첨단 AI반도체 기술자립을 막기 위한 바이든 행정부의 기존 규제를 집대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반도체생태계 대비 시급

한편, 10월 24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AI 국가안보각서’에서도 중국의 AI굴기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엿볼 수 있다. 각서에는 ‘AI 안보가 결국 국가안보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인재유치와 함께 미국의 AI 기술이 적대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미국은 향후 AI 기술경쟁력이 지금의 미중 간 군사력 격차를 단기간에 뛰어넘을 수 있는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셋째, 지난 2차례에 걸친 대중국 제재의 허점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해관총서 자료에 의하면, 2024년 10월 기준 중국의 미국 반도체 수입액이 약 96억 달러로 전년대비 42.5% 증가했고, 반도체 장비 수입액은 333억 달러로 전년대비 23% 증가하는 등 여전히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국산 반도체가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3차 제재에서 미국은 해외직접 생산품 규칙(FDPR)을 적용해 미국 외 제3국에서 생산된 HBM 및 반도체 장비도 만약 미국산 SW, 장비와 기술을 사용했을 경우 반드시 상무부 허가를 받도록 규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국가안보의 명분 아래 AI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간 경쟁과 충돌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AI 반도체 글로벌 생태계 중심에 서 있는 우리 기업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도 만만치 않다. 기업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산·관·학의 지혜와 힘이 모아져야 작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시간이 얼마 없다. 서둘러야 한다.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중국경영연구소장

박승찬

중국 칭화대에서 박사를 취득하고,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에서 경제통상전문관을 역임했다. 미국 듀크대(2010년) 및 미주리 주립대학(2023년) 방문학자로 미중기술패권을 연구했다. 현재 사단법인 한중연합회 회장 및 산하 중국경영연구소 소장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더차이나’, ‘딥차이나’, ‘미중패권전쟁에 맞서는 대한민국 미래지도, 국익의 길’, ‘알테쉬톡의 공습’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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