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 '히든페이스' 등 평단의 찬사 받아
"포스트 노스탤지어, 익숙한 것 재해석해"
올해 영화 시장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재개봉 열풍과 함께 외화를 리메이크한 작품들이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점이다. 적절한 현지화 전략은 물론 과거의 유행을 현대적 감성으로 훌륭하게 재해석했다는 게 주요 성공 포인트로 거론된다.
19일 영화계에 따르면, 올해는 '파일럿'을 비롯해 '핸섬가이즈', '청설', '히든페이스', '보통의 가족' 등 외화를 리메이크한 영화들이 관객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올해 리메이크 영화 중 가장 뛰어난 흥행 성적을 기록한 작품은 '파일럿'이다. 제작비 98억 원에 손익분기점은 220만 명이었는데, 누적관객수 470만 명을 돌파했다. 스웨덴 영화 '콕핏'을 원작으로 했는데, 민감한 젠더 문제를 불편하지 않은 유머로 돌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장 남자를 연기한 배우 조정석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조정석은 이 영화로 17일 서울 동교동 인디페이스에서 열린 '제11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조정석이 영화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제작비 46억 원의 중예산 영화 '핸섬가이즈'도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면서 중박 흥행을 거뒀다. '핸섬가이즈'는 미국영화 '터커 & 데일 Vs 이블'을 원작으로 한 코미디영화다. 2010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됐고, 각종 영화제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동명의 대만영화를 원작으로 한 '청설' 역시 평단의 지지를 받았다. 이 영화는 청각장애를 소재로 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특히 배우 홍경의 수어 및 표정 연기가 큰 화제가 됐다. 이번 영화를 통해 주연 배우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다.
동명의 콜롬비아 영화를 원작으로 한 '히든페이스'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음란서생', '인간중독' 등을 연출한 김대우 감독이 10년 만에 복귀해 연출한 작품으로 송승헌, 조여정 등이 출연했다. '기생충'처럼 독특한 가옥 구조를 바탕으로 인간의 욕망을 다채롭게 표현했다.
'청설'과 '히든페이스'는 지난달 한국영화 흥행 1~2위를 기록했다. '청설'은 매출액 71억 원으로 한국영화로는 지난달 최고 흥행 성적을 거뒀다. 이어 '히든페이스'가 매출액 61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으로 유명한 허진호 감독의 '보통의 가족' 역시 호평을 받았다. 흥행에서는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뒀지만, 외국에서 영화로 여러 번 리메이크가 된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한국의 정서에 맞게 잘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48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공식 초청작이기도 하다.
이 같은 리메이크 열풍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2007년에 개봉한 대만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리메이크한 작품이 내달 개봉한다. 배우 도경수가 출연해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영화는 올해 6월 일본에서 먼저 리메이크되어 개봉한 바 있다.
이지혜 영화평론가는 "최근 영화계에 부는 리메이크 열풍은 기존의 '노스텔지어'를 살짝 비튼 '포스트 노스텔지어'"라고 평가했다. 예전에 유행했던 영화를 그대로 재개봉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흐름에 맞게 탈바꿈해 '안전한 새로움'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평론가는 "과거에 유행했던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현재 여러모로 정체된 문화현상의 대책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비롯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