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벌SKㆍ스타플러스 에너지도 대출 확정
국내 반도체 및 배터리 기업들이 미국의 대출과 보조금 지급 승인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현지 투자를 가속화할 전망이다. 다만 내년 집권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중심주의 기조 하에 외부 투자에 부정적인 만큼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평가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20일(현지시간) 삼성전자에 대해 직접 보조금 47억4500만 달러(약 6조9000억 원)를 지급하는 내용의 계약을 최종적으로 체결했다. 이는 지난 4월 예비거래각서(PMT) 당시 발표했던 보조금 64억 달러(약 9조2000억 원)와 비교하면 약 26%(17억 달러) 줄어든 금액이다.
보조금이 줄어든 건 삼성전자가 투자 규모를 당초 계획 대비 줄였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30년까지 총 44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미국 정부와 협상해 왔으나 그 과정에서 최종 투자 규모를 370억 달러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투자금 대비 보조금 비율은 12.7%로,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 대비 가장 높다. 미국 기업인 마이크론과 인텔은 각각 12.3%, 8.7% 수준이다. SK하이닉스와 대만 TSMC의 투자금 대비 보조금 비율은 각각 11.8%, 10.3%다.
이번 보조금 지급 확정으로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 공장 건설 사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2022년 착공한 테일러시 반도체 생산 공장에 추가로 새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고, 첨단 패키징 연구개발(R&D) 시설도 세울 예정이다. 새 공장은 2026년 가동 예정이다.
앞서 SK하이닉스도 19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로부터 최대 4억5800만 달러(약 6639억 원) 규모의 직접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이는 8월 PMT 체결 당시 약속받은 금액 대비 800만 달러 늘어난 액수다. 이와 함께 최대 5억 달러(약 7248억 원)의 정부 대출 지원도 받는다.
SK하이닉스는 4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약 38억7000만 달러(약 5조6100억 원)를 투자해 인공지능(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 및 R&D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공장에서는 2028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AI향 솔루션을 양산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인근 퍼듀대 등 여러 파트너와 함께 약 1000개의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미국의 저리 대출 지원에 힘입어 현지 투자 계획 조율을 서두르고 있다.
SK온과 포드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는 지난 17일 이사회를 열고, 28억8000만 달러(약 4조1325억 원) 규모의 유상감자를 결정했다. 회사 측은 유상감자 사유에 대해 “해외 투자자본 효율성 제고를 위한 자본 재배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최근 미국 에너지부(DOE)가 첨단기술차량제조(ATVM) 프로그램에 따라 블루오벌SK에 대한 96억3304만 달러(13조8523억 원) 규모의 정책자금 차입을 최종 승인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ATVM은 자동차와 관련 부품 제조 사업에 대해 저금리로 대출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블루오벌SK는 지난해 6월 ATVM 정책자금 차입의 조건부 승인을 얻었다. 당시 발표된 대출 금액은 92억 달러(약 11조8000억 원)였는데, 최종 승인 과정에서 약 2조 원이 더 늘었다. 이는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관련 대출 프로그램 중 가장 큰 규모다.
이외에 삼성SDI와 스텔란티스의 합작회사인 스타플러스 에너지도 최근 미국 정부로부터 75억4000만 달러(약 10조5000억 원)의 조건부 대출을 승인받았다.
다만 내년 집권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불확실성의 변수로 꼽힌다. 보조금과 대출은 확정을 지었지만, 정작 집행은 트럼프 행정부 기간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는 대미 반도체 투자 방식에 관해서는 보조금보다는 관세를 선호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앞서 10월 말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의 대담에서 "반도체 보조금은 너무 나쁘다. 기업이 반도체를 만들도록 하기 위해 많은 돈을 내야 하는 건 옳지 않다"며 "10센트도 낼 필요 없다. 조세정책으로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기차·배터리 등 친환경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에도 부정적인 만큼 업계에서는 선제적인 투자 재조정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의 가장 큰 리스크는 불확실성”이라며 “정책 변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응 전략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