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형 위해 공범 ‘술술’…범죄자들의 대인관계란 [서초동 MSG]

입력 2024-12-23 06: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팔십 노인도 세 살 먹은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는 속담이 있다. 누구나 배울 점이 있다는 얘기다. 형사 사건은 사실상 나홀로 범죄가 많지 않기 때문에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 공범들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볼 때가 종종 있다.

마약사범들의 경우 99%는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지 않은 공범에 대해 진술한다. 이를 그들만의 용어로 ‘내린다’고 표현한다. 내가 들고 있는 패를 내려놓으면서 다른 공범도 내리게 한다는 뜻이다. 이는 수사에 협조한 점을 공적으로 인정받아 향후 감형 사유로 적용되기도 한다.

우정이나 사랑도 공적과 감형 앞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간다. 그렇기에 마약사범은 부모·자식, 형제도 없다고들 말한다. 처음에는 나를 배신할 리 없다며 극구 인정하지 않지만, 피의자로 입건돼 경찰서 문을 넘는 순간 분노를 드러내곤 한다.

이른바 ‘내려버린 사람’을 원망할 것도 같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 재판 시점에서는 이런 상황으로 흘러온 것이 이해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후 구치소에서 제삼자를 통해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다지기도 한다.

24시간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마약사범들이 깊은 정을 쌓는 예도 있다. ‘약’이라는 매개로 친분이 싹튼 이들은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얘기에 공감하며 서로의 거래처나 비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한 여자 의뢰인은 처음 구속됐는데, 방안에 이름이나 별칭으로 익히 알고 있었던 언니, 동생들이 많아서 일주일간은 마치 수련회 온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의지하며 언니들에게 투약의 비밀을 터놓았던 의뢰인은, 출소 후 언니들이 수사기관에 비밀 내용을 고발해 다시 구속됐다.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강제된 친밀감이었던 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경우, 피라미드 가장 위에 있는 총책과 가장 밑에 있는 인출책의 연결고리가 약하다. 이에 인출책을 검거해도 총책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총책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 있기 때문에 찾기가 더 어렵다. 심지어 인출책끼리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도 드물어서 검거된 인출책이 범죄를 거의 다 뒤집어쓰곤 한다.

반면 증권사기나 유사수신, 도박사이트 개장 등 조직형 범죄는 국내에 있는 이상 웬만해서는 공범이 다 검거된다. 이들은 입건되면 형량을 줄이기 위해 다른 공범들이 은닉한 자금 출처 등을 대부분 털어놓는다.

어느 도박사이트 사건 재판에서는 피고인들이 서로가 사이트 운영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증인으로 나온 직원들에게 “저 아세요?”라고 물었고, 모두가 공동 수괴로 지목하는 바람에 많은 피고인이 사이좋게 중형을 받았다.

다른 도박사이트 사건에서는 운영자를 대신해 자신이 수괴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수사기관이 실제 운영자를 검거해 구속했음에도 그는 끝까지 침묵을 유지하며 본인이 수괴라고 강조했고, 결국 운영자와 같은 형량을 받았다.

이보라 변호사는 “형사 사건에서 인간관계는 철저히 이익과 생존을 위해 조건적인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진정한 신뢰와는 거리가 멀다”며 “물론 공적을 쌓기 위한 협력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있겠지만, 언제든 그 관계는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애플·MS·오픈AI에 영상 넘기는 구글…한국은 빠졌다 [유튜브 삼키는 AI 빅테크]
  • “서울은 성동구, 경기는 과천”…올해 아파트값 상승률 뜯어보니
  • 감형 위해 공범 ‘술술’…범죄자들의 대인관계란 [서초동 MSG]
  • [새 리더십 시대]신한 빼고 다 바꿨다…5대 은행장 키워드 '파격ㆍ영업통'
  • [날씨] "롱패딩 입으세요"…아침 최저 -12도 강추위
  • 김준호, 김지민에 눈물의 프러포즈…"마지막 사랑이 돼줘"
  • [뉴 AI 트렌드-에이전트] 가상자산, AI 에이전트로 진화하나
  • [르포]“모임의 즐거움, 카뱅과 함께” 한파에도 줄서는 팝업의 비밀은
  • 오늘의 상승종목

  • 12.23 12:48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44,495,000
    • -1.46%
    • 이더리움
    • 5,058,000
    • -0.04%
    • 비트코인 캐시
    • 688,000
    • +0.73%
    • 리플
    • 3,332
    • -1.36%
    • 솔라나
    • 280,300
    • +1.74%
    • 에이다
    • 1,368
    • +0.81%
    • 이오스
    • 1,219
    • +2.09%
    • 트론
    • 374
    • +0.81%
    • 스텔라루멘
    • 549
    • +3%
    • 비트코인에스브이
    • 81,950
    • +3.08%
    • 체인링크
    • 34,800
    • +4.04%
    • 샌드박스
    • 877
    • +3.18%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