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청년인재 좌절시키는 중기인 ‘3心’

입력 2024-12-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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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욕심·의심·변심’에 인재 이탈 심각
고통분담만 강조…과실 나누지않아
기업인 변화 없으면 中企 육성 헛일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L군이 전화해 회사에 못 다니겠다고 하소연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에 다니다 그만두고 국내 중소기업으로 옮긴 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옮긴다고 한다.

L군은 재학시절 지도교수로부터 경직적인 대기업보다 유망한 중소기업에서 능력을 발휘해 기업과 같이 성장하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여느 학생들처럼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대기업에 지원했고 그중에 보수를 가장 많이 주는 외국계 대기업을 선택했다.

입사해서 열심히 일해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고 유창한 외국어 실력으로 본사와의 소통도 원활히 수행했다. 하지만, 글로벌 대기업의 시스템은 기계적이어서 현지 직원으로서 창의적으로 일하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인재들도 많아 경쟁이 치열하며 실적 중심으로 평가하는 제도가 냉정하게만 느껴졌다.

3년 정도 다니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던 중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하던 중소기업에서 유능한 글로벌 인재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와서 미래의 잠재력을 보고 이직을 결정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안에서 근무해보니 실상이 많이 달라 실망했다는 것이다.

청년이 중소기업에 안 오는 이유는 잘 알려져 있다. 대기업보다 낮은 임금 수준, 부족한 복지혜택, 사회적 편견 등이 꼽힌다. 그런데 청년이 중소기업을 떠나는 이유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열악한 근무조건을 알고도 중소기업을 선택한 청년이 퇴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국계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L군에게 물어보았다. 왜 어렵게 선택한 중소기업을 반년 만에 떠나느냐고.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봐야 하지 않느냐고도 설득했다. L군은 시스템보다 기업인 개인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운영하는 중소기업에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도달했다고 답했다.

특히 처음에 입사할 때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기업인의 ‘3심(三心)’에 크게 좌절했다고 호소했다. 우선은 욕심(欲心)이 많다고 하였다. 직원들에게 주는 보수나 복지를 아까워하며 인색해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허리띠 졸라매자 하는데 잘 될 때도 어려울 때를 대비해 허리띠 졸라매자고 한다. 늘 위기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고통분담을 강조하면서 성장의 과실은 나누려 하지 않는다. 말로는 ‘동고동락(同苦同樂)’하자고 하지만, ‘동고’만 있지 ‘동락’은 없는 셈이다.

두 번째로 의심(疑心)이 많다고 한다. 직원들은 근무시간에 열심히 일하지 않으며 회사 물건을 사적으로 유용한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에게만 맡기면 잘못될까 봐 불안해하며 재량권을 주지 않는다. 돈에 대한 관리도 남에게 맡기지 못한다. 부서장이나 임원의 전결권은 매우 작고 법인카드 지출이나 예산의 집행도 사후적으로 직접 챙기며 소액도 용도를 따진다고 한다. 수출 상담을 위해 직원들이 해외에 출장 가서 예기치 않은 비용이 발생하면 사비로 지출하는 게 속 편하다고 한다. 그러니 애사심이 생길 리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심(變心)이 심하다고 한다. 어제 한 말이 다르고 오늘 한 말이 다르다. 경영컨설턴트나 자문교수가 한두 마디 하면 그걸 따라 하라고 요구한다. 어디 세미나에 가서 새로운 경영혁신 방안을 들으면 회사에 도입해 적용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다 며칠 지나면 왜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고 질책하기도 한다. 본인의 의사결정을 수시로 번복해 혼란을 자초한다.

그러고는 똑바로 일하지 않는다고 야단친다. 사장님의 지시에 의견을 이야기하면 토를 달았다고 불호령이 떨어진다.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면 오히려 눈밖에 나기 쉽다. 헌신적으로 일하면 너만 튀려 하냐고 다른 직원들이 싫어한다. 그냥 시키는 대로 대충하며 넘어가는 게 상책이다. 다른 건 몰라도 기업인의 3심은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회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참 안타깝다. 부족한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도전정신을 갖고 꿈을 키우기 위해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 인재가 실망감에 떠나는 현실이 갑갑하다. 실제로 중소기업의 청년 인력 이탈은 심각하다. 중소기업 재직 청년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만든 ‘청년내일채움공제’ 가입자의 35.4%는 2년 이내에 퇴사한다. 정부 지원만으로 청년 인재를 묶어둘 수 없다. 중소기업을 선택한 청년 인재가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인 스스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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