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입자인 듯 파동인 듯 ‘웨이비클’

입력 2024-12-2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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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영국의 과학 전문 저널 ‘뉴사이언티스트’와 옥스퍼드대 출판부 등이 올 한 해를 관통한 과학 이슈를 담은 ‘올해의 단어’를 최근 공개했다. 올 여름 전 세계를 강타한 지속적인 고온과 폭염의 이유로 꼽히는 히트돔(heat dome·열돔)을 비롯해 줄기 세포(stem cell)과 배아(embryo)의 합성어인 스템브리오 등이 들어있다. 그리고 파동(wave)과 입자(particle)의 합성어인 ‘웨이비클(wavicle)’도 올해의 단어 중 하나로 꼽혔다. 이는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단어다. 좀 풀어 말하자면 입자지만 파동의 특성을 보이고, 파동으로 행동하는 줄 알았는데 입자의 특성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의미다.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감을 잡으려면 물리학자들이 세상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입자와 파동이 있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입자’는 일상 용어인 물질과 유사하다. 보통은 물질을 이루는 작은 알갱이를 입자라 부른다. 입자의 경우 지금 어디 있는지 위치를 확정할 수 있고, 또 얼마나 무거운지 따위도 측정할 수도 있다.

이에 반해 파동은 하나의 현상이다. 예를 들어 호수에 빗방울이 하나둘씩 툭툭 떨어질 때마다 무수한 동심원이 밖으로 퍼져나간다. 또한 기타줄을 가볍게 튕기면 줄이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소리가 공간에 가득 차는데 이런 현상들 모두를 파동이라 부른다. 고전 물리에서 입자는 입자고, 파동은 파동이다. 어느 한곳에 정확히 위치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공간에 퍼지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우리 상상력을 뛰어넘는 일이다.

하지만 미시 세계라면 말이 다르다. 그곳은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즉, 이제까지 파동으로 기술된 현상 뒤에 입자의 특성이 드러나는가 하면 고입자로 다뤘던 물질이 파동의 속성을 보인다. 이런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은 양자(quantum) 혹은 양자화(quantization)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양자화’는 고전물리와 현대물리를 나누는 핵심 개념 중 하나다. 에너지의 도움을 받아 설명하면 이렇다. 물리학에서 에너지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또한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이 가능하다. 일례로 식탁 위 핸드폰은 위치에너지를 갖고 있고, 그걸 집으려다 실수로 떨어뜨린다면 바닥에 닿는 순간까지 위치에너지가 줄고 운동에너지가 늘어난다. 그리고 쿵 소리를 내며 방바닥을 치는 순간 핸드폰의 운동에너지 일부가 소리 에너지로 변한다. 이런 특성은 거시나 미시의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에너지의 크기다. 거시 세계에서는 에너지값이 연속적으로 변하지만, 원자 혹은 그보다 더 작은 세계로 파고 들어가면 사정이 좀 달라진다. 미시 세계에서 에너지는 플랑크 상수라 불리는 최소 단위의 정수배로 주어진다. 이처럼 에너지를 비롯한 임의의 물리량이 특정 최소단위 즉, 양자의 한 배, 두 배, 세 배 등으로 주어지는 걸 양자화(quantization)라 부른다. 마치 우리나라에선 돈을 1원 단위로 세고 계단을 한 칸씩 밟아 오르는 것과 유사하다(물론 계단은 한꺼번에 서너 칸을 오를 수도 있지만…).

그럼 도대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 걸까? 핵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앞서 말한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이다. 오랫동안 파동으로 기술됐는데, 상황에 따라 입자처럼 행동하기도 하는 대표 예가 바로 빛이다. ‘빛이 무엇일까?’ 물리학자들이 오랫동안 사투를 벌여온 질문 중 하나다. 밝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때론 신비한 빛! 하지만 불행히도 이걸 담아 보관하거나 택배로 보낼 수 있는 상자는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빛은 물질 즉, ‘알갱이의 집합체가 아닌 파동’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1905년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photo electric effect)에 대한 논문을 통해 빛이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광전효과는 말 그대로 금속 표면에 빛을 쏘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이다. 실험 자체는 간단하다. 쐬어주는 빛의 파장을 바꿔 가며 얼마나 많은 전자가 튀어나오는지를 측정한다. 파장은 달리기 선수의 보폭과 같다. 어떤 빛은 보폭이 굉장히 크고, 다른 빛은 보폭이 작다.

그런데 실험 결과가 빛의 파장론으로는 잘 설명이 되질 않았다. 일례로 빛의 밝기를 아무리 높여도 파장이 일정 값 이상 되지 않으면 전자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전자 방출 시간도 예상과 달랐다. 빛이 파동이란 관점에서 보면 광전효과는 즉각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이유는 에너지 축적시간 때문이다. 즉, 빛이 계속 금속 표면에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조금씩 누적되어야 결국 전자를 튕겨내게 된다. 때문에 반응이 나타나기까지 좀 시간이 걸린다.그런데 실제 실험에선 파장이 어느 값 이상으로 짧아지면 금속 판에 빛이 닿자마자 전자가 튀어나왔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빛이 파동이 아니라 작은 에너지 덩어리, 일명 광자(photon)로 작용하기 때문이란 해석을 내놓았다. 즉, 마치 두 입자가 충돌하는 것처럼 전자와 광자가 충돌하고, 이때 광자가 전자 방출에 필요한 크기 이상의 에너지를 갖고 있으면 전자가 바로 튀어나온다. 이를 통해 전자의 즉각적인 방출만이 아니라, 빛의 파장이 전자 방출과 관련된 현상까지 모두 깔끔하게 설명된다.

이로써 빛이 파동과 입자의 모습 모두를 갖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렇다면 입자로만 알고 있던 게 파동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을까? 당연히 있다. 물리에선 이제 더 이상 연구할 게 없다고 여겨지던 시점에 거짓말처럼 시작된 고전물리 세계에 균열이 발생하고, 그리고 그 사이로 현대물리의 꽃이 자라난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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