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전세 사기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강도 대출 규제까지 겹친 탓이다. 덩달아 주거 비용이 오르면서 실수요자들의 부담이 더욱 확대된 모습이다.
26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0월 전국 주택 전·월세전환율은 6%로 전월 대비 0.1%포인트(p)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서울은 5.1%를 기록, 8월(4.9%) 이후 꾸준한 오름세를 보였다. 전·월세전환율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비율로, 높을수록 전세보증금에 비해 월 차임 부담이 크다는 의미다.
월세도 오르고 있다. 11월 기준 전국 주택 월세가격지수는 105.20으로, 전년 동기(103.83) 대비 1.37p 상승했다. 평균 월세는 77만4000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74만9000원)과 비교할 때 3.4% 올랐다.
서울의 월세가격지수(106.41)는 전년 동기(104.14) 대비 상승 폭이 더 컸다. 평균 월세는 100만 원 선을 넘겼다. 11월 기준 111만4000원으로, 지난해 11월(106만6000원)보다 5만 원가량 상승했다.
월세 상승 속도도 가파르다. 부동산 정보업체 ‘다방’이 서울 월세 거래를 분석한 결과 최근 3년 동안 서울에서 월세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자치구는 강동구(60.1%)였다. 이어 구로구(36.9%)와 양천구(31.2%) 순이다. 전국에서 평균 월세가 가장 비싼 곳은 서초구로 올해 평균 월세는 370만 원이다.
가격 상승에도 임대차 시장에서의 월세 인기는 더욱 늘고 있다. 특히 비아파트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높다. 올 1~11월 서울 연립·다세대주택의 전·월세 거래 중 월세 거래는 총 6만6194건으로 전년 동기(6만125건)보다 10.1% 늘었다.
반면 전세 거래는 5만760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만6408건)보다 13.3% 줄었다. 올해 월세 거래량이 전세 거래량보다 14.9% 더 많았던 셈이다. 같은 기간 전세 거래량이 월세 거래량보다 10.5% 더 많았던 지난해 상황과 반대다.
수요자들은 월세 선호 현상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방이 자사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 1598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59%(935명)가 ‘내년 월세가 오를 것’이라고 응답했다. 월세 상승을 전망하는 이유로는 ‘월세 수요 증가’(37%)를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업계에선 월세 비중 확대의 원인을 전세 사기에 대한 우려와 대출규제에서 찾고 있다. 지난해 전국을 강타한 조직적 전세 사기는 비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수요자들의 ‘전세 포비아’(공포증)를 불러왔다.
평생 모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며 전세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로 돌리는 이들이 늘었다. 2022년 39.5%였던 서울 연립·다세대주택 월세 비중은 지난해 48.1%로 뛰더니 올해 들어 50%를 돌파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비아파트의 전세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공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면 결국 비싼 아파트를 매수하는 방향으로 이어져 서민들의 주거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8월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을 중단하는 내용의 대출규제를 발표했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매입하는 ‘갭투자’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9월에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가 시행되면서 전세자금대출로 빌릴 수 있는 한도가 줄었다.
높은 대출금리도 전세 기피에 영향을 주고 있다. 20일 기준으로 4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의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4.03%~5.18%로 7월 대비 최소 1% 이상 올랐다. 전·월세전환율과 대출금리 사이 큰 차이가 없다 보니 수요자로선 전세대출을 받는 것보다 월세로 돌리거나 반전세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대출 규제로 인해 전세로 살기 어려워진 수요층의 상당수는 월세 시장으로 유입될 것이고, 결국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