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인 25일은 이 인사로 하루를 열 듯합니다. 공휴일인 만큼 즐거운 약속을 계획하는 이들이 숱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따뜻한 이불 안에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겠죠. 밀린 드라마를 몰아보기도 제격인 날입니다.
마침 연말 시상식 시즌입니다. KBS, MBC, SBS 지상파 3사는 연말마다 '연기대상'을 여는데요.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자랑한 드라마 속 뛰어난 연기력으로 안방극장을 쥐락펴락한 배우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만큼 연말마다 높은 관심을 받는 행사입니다.
'SBS 연기대상'은 21일 대상 수상자로 배우 장나라가 호명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아직 두 개의 시상식이 남아 있습니다. 30일 오후 8시 40분엔 'MBC 연기대상'이, 31일 오후 7시엔 'KBS 연기대상'이 열리죠.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작품들을 몰아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올해를 빛낸 드라마와 배우들을 살펴봤습니다.
올해 '드라마 맛집'으로 소문난 곳은 단연 tvN입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내남결), '눈물의 여왕', '선재 업고 튀어'(선업튀) 등 쟁쟁한 작품들이 상반기에 연달아 방송됐죠. 여기에 지난달 막을 내린 '정년이'까지. 방송마다 시청률, 화제성을 꽉 잡으면서 안방을 즐겁게 했습니다.
특히 3월 방송을 시작한 '눈물의 여왕'은 배우 김지원·김수현의 비주얼 합으로 '이 주식은 된다'는 예비 시청자들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눈물의 여왕'은 퀸즈 그룹 재벌 3세, 백화점의 여왕 홍해인(김지원 분) 용두리 이장 아들, 슈퍼마켓 왕자 백현우(김수현 분) 3년 차 부부의 아찔한 위기와 기적처럼 다시 시작되는 사랑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인데요. 현빈, 손예진 주연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으로 역대 tvN 드라마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박지은 작가와 '불가살'의 장영우 감독, 그리고 '빈센조', '작은 아씨들'의 김희원 감독이 의기투합한 작품입니다. 출중한 '작감배'(작가·감독·배우) 라인업으로 '흥행은 떼놓은 당상' 소리를 들었죠.
베일을 벗은 후에는 애틋한 서사로 안방극장을 울고 웃게 했습니다. 흔하디 흔한 재벌과 서민의 사랑 소재지만, 재벌 여성과 서민 남성으로 신데렐라 클리셰를 뒤집으면서 신선함을 꾀했죠.
다만 남녀 캐릭터 설정을 뒤집기만 했다는 단순한 구조와 갈수록 답답한 전개, 재벌 미화 등에 대해선 회의적 시선도 있었는데요. '눈물의 여왕'의 질주엔 되레 불이 붙었습니다. 최종회에서 시청률 24.9%(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 가구 기준)를 기록하며 tvN 역대 시청률 1위에 오른 거죠. 이와 함께 상반기 넷플릭스를 통해 6억8260만 시청시간을 기록하며 가장 인기 있는 K드라마 반열에 올랐습니다.
시청률은 아쉽지만, 화제성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드라마도 있습니다. '변우석 신드롬'을 일으킨 '선업튀'입니다.
4월 첫 방송된 '선업튀'는 삶의 의지를 일깨워준 아티스트 류선재(변우석 분)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열성팬 임솔(김혜윤 분)이 2008년으로 돌아가 '최애'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타임슬립 구원 로맨스입니다.
시청률로 따져 보면 1회 3.1%로 시작해 최종회 5.8%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긴 했으나, '눈물의 여왕'과 앞자리부터 다른 수치입니다. 그러나 '선업튀'의 화제성은 상상 이상이었는데요. 방영 기간 TV-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드라마 화제성 1위는 물론 주연 배우인 변우석, 김혜윤, 송건희 등이 출연자 화제성 순위를 싹쓸이하는 돌풍도 일으켰습니다.
특히 변우석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더니 직접 부른 OST '소나기'로 멜론 톱100 차트 최고 순위 3위를 기록, 미국 빌보드 차트 '빌보드 글로벌 200'에 차트인하는 등 이례적인 영향력을 보였습니다. 특히 연말 가요 시상식인 '2024 마마 어워즈'(2024 MAMA AWARDS), '2024 멜론뮤직어워드'에서 각각 '페이보릿 글로벌 트랜딩 뮤직', '베스트 OST' 트로피까지 들어 올리는 기염을 토했죠.
'선재앓이'는 드라마 종영 후 '변우석 열풍'으로 이어졌습니다. 수십여 개의 선호도 조사에서 1위 행진을 이어갔고, 광고모델 자리도 꿰차면서 팬들은 물론 광고주까지(?) 웃게 한 겁니다.
다만 드라마 연말 시상식은 지상파 3사에서만 진행합니다. 케이블 채널인 tvN은 별다른 시상식을 진행하지 않는데요. 안타깝게도 김지원과 김수현, 변우석과 김혜윤이 이들 드라마로 연기대상을 받는 모습은 볼 수 없다는 뜻이죠.
지상파 3사에서도 눈에 띄는 작품이 다수 나왔습니다.
먼저 SBS에선 이번 '연기대상' 대상 수상자 장나라가 변호사 '차은경'으로 분한 '굿파트너'의 활약이 돋보였는데요. 이혼이 '천직'인 스타 변호사 차은경과 이혼은 '처음'인 신입 변호사 한유리(남지현 분)의 차갑고 뜨거운 휴먼 법정 오피스 드라마인 이 작품은 최종회 시청률 15.2%를 기록했습니다.
드라마가 단순 이혼 과정만 그려낸 건 아닙니다. 가정이 해체되는 다양한 사연, 저마다의 고충, 실제 목격되는 현대 사회의 이슈 등을 엮어내 풍부한 서사를 완성했죠. 실제 13년간 이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한 최유나 변호사가 대본 집필을 맡아 전문성과 현실감도 높였습니다. 특히 장나라와 남지현의 워맨스 케미스트리가 돋보였는데요. 장나라도 대상 수상 후 남지현의 이름을 부르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또 다른 유력 대상 후보로 거론됐던 박신혜는 '악마'로 변신했습니다. '지옥에서 온 판사'('지판사')를 통해서였는데요. '지판사'는 판사의 몸에 들어간 악마 강빛나(박신혜 분)가 지옥 같은 현실에서 인간적인 열혈형사 한다온(김재영 분)을 만나 죄인을 처단하며 진정한 판사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입니다.
박신혜의 20여 년 연기 경력은 '지판사'에서 제대로 빛났습니다. 특히 데이트 폭력 가해자 문정준(장도하 분)을 처단하는 장면에선 안방극장이 충격으로 물들기도 했죠. 강빛나는 문정준에게 폭력을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여자친구로 변신, 그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거나 발목을 꺾으면서 신랄하게 웃죠.
박신혜는 '천국의 계단', '상속자들', '닥터 슬럼프' 등 다양한 작품에서 '캔디'와도 같은 캐릭터를 맡아왔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꿋꿋하게 이겨내 가는 신데렐라 캐릭터죠. 그러나 '지판사'에선 이 이미지를 완벽히 벗어던지면서 새로운 '인생캐'(인생 캐릭터)를 만들어냈습니다.
MBC 작품들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하늬가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 이후 7년 만에 '밤에 피는 꽃'(밤피꽃)으로 돌아왔는데요. 이종원과 안정적인 호흡을 펼치며 최고 시청률 18.4%를 기록했죠. '밤피꽃'은 밤이 되면 담을 넘는 15년 차 수절과부 조여화(이하늬 분)와 사대문 안 모두가 탐내는 완벽남 종사관 박수호(이종원 분)의 담 넘고 선 넘는 아슬아슬 코믹 액션 사극입니다.
배턴을 이어받은 건 '원더풀 월드'였습니다. 작품은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직접 처단한 엄마가 그날에 얽힌 미스터리한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리면서 극강의 몰입감과 긴장감을 안겼는데요. 6년 만에 복귀한 김남주의 연기력과 차은우의 이미지 변신으로 재미를 더했죠.
가족이지만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부녀의 팽팽한 심리전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한석규의 명품 연기로 최고 시청률 9.6%를 기록한 작품은 단순히 범인만 추리하는 장르물을 뛰어넘어, 의심으로 멀어진 부녀의 관계를 통해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줬습니다.
KBS는 다소 부진합니다. 올해 수목드라마를 부활시키고, 주말극 명가라는 명성을 되찾기 위해 고전했지만 특별한 성과를 내진 못했죠. 판타지 사극 '환상연가'는 최고 4.3%의 시청률을 기록했고요. 8년 만에 KBS로 복귀한 김하늘의 '멱살 한번 잡힙시다'는 자체 최고 기록인 3.8%로 종영했습니다.
그나마 10월 종영한 원로배우 이순재 주연의 '개소리'로 체면치레를 했는데요. 시니어와 경찰견 출신 '소피'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드라마에서 자주 다루지 않았던 노년의 성장기를 소재로 다뤄 신선하다는 호평과 함께 자체 최고 시청률 4.6%를 기록했습니다. 이순재만의 진지한데 웃긴(?) 코믹 연기가 유쾌한 장면을 만들어냈고, 역시 '레전드'라는 평가가 이어졌죠.
주말극 '미녀와 순정남', 현재 방영 중인 '다리미 패밀리'는 자체 최고 시청률이 각각 21.4%, 17.8%로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30%대의 시청률이 가뿐히 나왔던 KBS 주말극 전성기를 떠올려보면 아쉬움이 남는 수치죠.
종합편성채널(종편)인 JTBC에서도 올해 론칭한 드라마 다수가 흥행했습니다. 특히 8월 종영한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한 인물이 20대와 50대를 오간다는 판타지 소재와 이정은, 정은지 등 배우들의 열연, 적절할 때 치고 빠지는 긴장감과 로맨스 요소로 최종회 11.7% 시청률로 종영했습니다. 지난달 끝난 '정숙한 세일즈'도 금기를 깨고 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인기를 끌었고, 최종회 시청률 8.6%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죠.
올해 방송국 드라마들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반면 그동안 남다른 설정과 신선한 서사로 재미를 주던 OTT 플랫폼에선 이렇다 할 오리지널 시리즈가 나오지 못했는데요. 수백억 원 규모의 자본이 투입된 시리즈 작품도 적지 않아, 이들 작품의 부진은 더욱 뼈아픕니다.
국내 OTT 업계 1위 넷플릭스는 올해 '스위트홈3'부터 '경성크리처2', '지옥2' 등 다양한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떨어지는 완성도, 대중 사이 극명하게 갈린 호불호로 전작처럼 흥행하진 못했습니다. 'Mr. 플랑크톤' 정도가 마니아층의 호평을 받았을까요.
티빙은 선방했습니다. '피라미드 게임'이 입소문을 타고 글로벌 시청자까지 사로잡는가 하면, '좋거나 나쁜 동재'도 사랑받았죠. 기대작이던 '우씨황후'는 나름 이슈가 되긴 했으나, 작품성보단 역사 왜곡 논란과 과한 노출 장면이 입방아에 올랐죠.
디즈니 플러스 '킬러들의 쇼핑몰', '지배종' 등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 차트에서도 높은 순위를 기록했는데요. 송강호의 주연작 '삼식이 삼촌'은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더군다나 디즈니 플러스는 지난해 '무빙'으로 '대박'을 터뜨린 바 있어, 이를 뛰어넘거나 버금가는 성적을 써낼 작품을 론칭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숙제를 떠안은 상황이죠.
다행히 '조명가게'가 4일 공개 이후 디즈니 플러스 TV쇼 월드 와이드 부문에서 톱 2위까지 오르며 선두권을 지켰는데요. '조명가게'와 '무빙'의 원작을 쓴 강풀 작가는 현재 '무빙2' 대본 작업 중입니다. '조명가게'와 '무빙'의 작품 시대적 배경이 2018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세계관이 추후 통합될 가능성이 큰데요. 디즈니 플러스와 강풀 작가의 '강풀 유니버스' 아래라면 '무빙' 이상의 대작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기대도 나옵니다.
올해도 수많은 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습니다. 시상식 시즌이 지나면 새로운 콘텐츠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눈길을 끌 텐데요. 내년엔 또 어떤 신선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안방극장을 물들일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