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90세를 바라보는 가운데 노화에 따른 신체의 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과도 싸워야 하는 과제가 무거워지고 있다. 사회적·정책적 그늘에 놓인 노인 우울증 문제는 초고령사회를 맞이한 대한민국에서 갈수록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우울증은 노년기 가장 흔한 정신증상 중 하나다. 8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전체 우울증 환자의 31.0%는 60대 이상으로 집계됐다. 60대가 15만1349명(13.9%), 70대가 11만5805명(10.6%), 80대 이상이 7만683명(6.5%)의 분포를 보였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 10명 중 3명은 노인 환자인 셈이다.
우울증을 앓는 노인이 많단 점은 연령대별 일정 인구 내 우울증 환자 규모를 살펴보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인구 1000명당 우울증 환자(2021년 기준)는 60대가 20.7명, 70대가 31.9명, 80대 이상이 31.6명에 달했다. 전체 연령대 평균 18.1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그러나 이마저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사례에 한정돼 있다. 우울감을 느끼면서도 진료를 받지 않거나 진료의 필요성조차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2023년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단축형 노인우울척도(Short Form of Geriatric Depression Scale: SGDS)를 사용해 우울증상을 측정한 결과 전체의 11.3%가 우울증상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85세 이상에서는 20%를 초과했다.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로 분류된 후 불과 7년 만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전례 없이 빠른 속도다. 전 세계에서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일본의 경우 이 단계를 거치는 데 13년이 걸렸다.
초고속으로 초고령화가 이뤄진 만큼 노년기 삶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제도적 울타리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노인 우울증에 대한 인식과 대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전 주기적으로 국민 정신건강을 지원하겠다며 2023년 12월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청년층 정신건강검진을 우선 확대하거나 대학·직장에서의 마음건강 지원을 강화하는 등 노인은 소외돼 있다. 노인 우울증을 초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단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어긋난 행보다.
노인 우울증은 높은 노인 빈곤율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66세 이상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약 3배 높은 불명예 1위다. 경제적으로도 고립되면서 우울감을 가속하고, 이는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 역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