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우리가 궁금한 마을

입력 2024-12-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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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며칠 전 크리스마스 날 아침 텔레비전에서 우리나라의 산타마을이라는 경상북도 봉화군 분천마을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어릴 때 우리 마을과 우리 집에는 절대 오지 않는 산타 할아버지를 꼭 한 번 만나보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산타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텔레비전을 보며 언제 꼭 한 번 분천마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봉화군 분천마을이 핀란드의 산타마을이라는 로바니에미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다음 해마다 핀란드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 산타할아버지가 이 마을로 방문한다. 마을 전체가 크리스마스카드에 나오는 산타 풍의 마을이었다. 사계절 산타마을인 것이었다.

대관령 아래에 산촌에서 태어나 대관령의 산만 보고 자란 나는 어린 시절 화가 샤갈의 그림 속 마을이 궁금했다. 샤갈의 그림 가운데 ‘나와 마을’이라는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열 살쯤 되었을 때였다. 집에 샤갈의 그림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해 강릉 시내의 중학교에 들어간 작은형이 입학과 함께 학교에서 받아온 미술책 속에 ‘나와 마을’이라는 샤갈의 그림이 들어 있었다. 내 눈에 그 그림은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 속의 마을이거나 만화 속의 마을처럼 보였다.

내가 사는 산골 마을엔 교회가 없는데, 샤갈의 마을엔 교회가 있고,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이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시내 교회에서 빨랫비누나 사탕을 들고 우리 마을로 전도를 나오는 그런 사람일까, 아니면 그냥 교회에 다니는 마을 사람일까.

또 하나 궁금했던 것은 그림 속 남자가 어깨에 메고 있는 쟁기는 괭이일까, 쇠스랑일까, 하는 것이었다. 괭이나 쇠스랑이라고 하기엔 쟁기 날이 너무 길다. 물으면 형은 그 책으로 공부를 하면서도 모른다고 했고, 언제나 아버지가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그것은 낫이라고 했다.

내가 아는 낫은 꼴을 베는 낫이든 벼를 베는 낫이든, 아니면 나무를 툭툭 자르는 무쇠 낫이든 저만큼 손잡이가 길지도 않고, 낫날 역시 도리깨만큼 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풀을 앉아서 베지만, 저 나라에서는 풀을 서서 낫을 땅으로 휘휘 휘두르면서 벤단다. 그래서 낫자루가 우리나라 괭이자루보다 길고 낫날도 우리 것보다 훨씬 크단다.” 설명을 들은 다음 나는 또 궁금해졌다. 저 사람들은 왜 우리처럼 앉아서 풀을 베지 못하는 것일까.

들판에서 일을 하는 소는 많아도 젖소는 한 마리도 없는 마을이어서 우유는 대체 어떻게 짜는지도 궁금했는데 그걸 그림으로 알려준 것도 샤갈의 그림이었다. 그림 속엔 소젖을 짜는 여자는 의자에 앉아 젖을 짠다. 소젖을 짤 때는 그렇게 꼭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도 궁금했다.

어린 시절 내가 그런 것이 궁금했던 것처럼 텔레비전 속에 분천마을을 방문한 많은 아이들도 저마다 궁금한 것이 많을 것이다. 산타의 썰매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썰매를 끄는 사슴에 대해서도 궁금할 것이다. 한국의 산타 마을에 대해서도 궁금하고 또 핀란드에 있다는 로바니에미시 마을에 대해서도 궁금할 것이다.

텔레비전 속 분천마을은 한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질 좋은 소나무 목재를 생산해내던 곳이었다. 그 시절이 끝난 다음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고 점차 비어가던 마을이 어떤 사람의 아이디어로 새로 산타마을로 바뀌었다고 했다. 아이들의 꿈이 새록새록 자라는 마을로 바뀐 것이다. 언제 꼭 한번 나도 어린 시절 나에게는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산타를 만나러 가듯 저 마을을 방문하고 싶다. 눈 내리는 겨울이 아니라도 좋다. 꽃피는 봄의 산타마을도 동화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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