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혼자서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일은 거의 없어요”
임선진 국립정신건강센터 노인정신과 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노인 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은 평범한 주변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노인 환자가 스스로 본인의 우울감이나 인지력 저하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건강에 이상이 느껴져도 주변에 짐이 되기 싫어서, 치료까지 필요한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병원에 가지 않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임 과장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노인을 자주 유심히 살펴보고, 늦지 않은 시기에 함께 병원에 나서줘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본지는 최근 서울 광진구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임 과장을 만나 노인 정신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에 대해 들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1962년 개원한 국립 정신의료기관으로 진료를 비롯해 연구, 정책개발, 정신건강사업 등을 수행한다. 진료를 담당하는 의료부 내에 65세 이상 환자들을 위한 ‘노인정신과’를 별도로 두고 있다. 임 과장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노인정신건강 인증의로서 공공의료에 종사하고 있다.
한국 노인들은 현재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사면초가에 놓였다. 축적한 자산이 없고, 젊은 세대에 비해 교육을 받지 못했다. 사회와 문화는 노인들이 적응하고 향유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수치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1년 우울증·불안장애 진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우울증 환자의 35.7%가 6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자살사망통계에 따르면 2022년 연령대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80세 이상(59.4명)과 70대(39명)가 가장 높았다.
임 과장은 “현재 한국 노인 인구가 처한 상황은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다”라며 “과거에는 전쟁을 겪었고, 부모 봉양과 자식 양육에 헌신했지만 정작 본인은 교육을 충분히 받을 기회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 수준이 낮으면 치매와 인지장애 위험도가 높아지는데, 한국은 특히 매우 많은 여성 노인이 교육에 접근하지 못했다”라며 “이뿐만 아니라 음식을 짜게 먹는 습관이 혈관성 치매 위험과 관련이 있어 앞으로도 유병률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경제적 문제가 정신건강 유지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1위다. 2020년 기준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노인 빈곤율 평균인 14.2%의 3배에 가깝다. 은퇴 후 연금 소득에 의존하거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노인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고려하기는 쉽지 않다.
임 과장은 “인생의 후반부에서 지금까지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한 스스로의 인정과 이를 통한 만족감을 느끼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런 ‘긍정적 노화’를 가능하게 하는 마음의 여유도, 경제적 여력도 없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가족 문화가 변해서 3대가 함께 사는 집은 찾아보기 힘들고, 혼자 살거나 자식의 도움을 받지 않는 노부부 가구가 흔하다”라며 “노인의 사회적 고립과 빈곤이 심화하는 상황에 어르신들이 우울해지는 것이 당연하고, 자식한테 피해를 주기 싫어서 우울감이 들어도 이를 외면해버리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족과 주변의 꾸준한 관심이 중요하다. 우울증이나 인지력 저하는 두드러지는 행동 변화가 많지 않아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봐야 이상을 눈치챌 수 있다. 사회적 네트워크도 노인을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복지부 노인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3년 전체 1인 가구 중 65세 이상 독거 노인의 비중은 32.8%로 2020년 대비 13%포인트 증가했다. 노인 부모와 자녀가 함께 거주하는 가구는 2020년 20.1%에서 2023년 10.3%까지 급격하게 줄었다.
임 과장은 “노인 환자는 복용 중인 약이 많고, 수술하는 경우도 많은데 약물이나 신체적 상태에 의해 정신과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라며 “노인은 자신의 증상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증상이 있어도 자신이 나약한 탓이라며 자책하고 숨기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변 사람들이 노인의 식사량, 신체 활동량, 주무시는 시간 등 일상적인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정부가 정책을 통해 경제적, 물리적 지원을 직접 투입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입원 치료가 필요한 저소득 취약계층 독거 노인에게 간병인을 지원하면, 비용 때문에 입원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를 줄일 수 있다. 실버타운과 유치원을 함께 만들거나, 청년과 노인 세대가 함께 지내게 되는 공생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노인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방법이다.
임 과장은 “현재는 장기요양보험이 있어, 일정 연령이 되면 신체 및 인지 기능에 따른 등급이 부여돼 각종 요양서비스가 제공된다”라며 “다만 저소득 취약층 노인은 입원 치료가 필요해도 간병인 비용 부담으로 치료를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입원 치료를 하면 충분히 증상을 조절해 향후 기관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을 늘릴 수 있는데, 돈 때문에 가능성을 포기하게 되는 일이 안타깝다”라며 “공공의료기관만이라도 일부 환자들 대상으로 간병인이 지원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