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쇼크에 원화 약세 ‘직격탄’…맥 못 추고 1500원 직전까지 쭉쭉 밀린다

입력 2024-12-29 13:02 수정 2024-12-29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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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1% 이상 급등하고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하며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보인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7.86(1.57%)포인트 상승한 2442.01을 나타냈다.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 1452원을 나타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증시가 1% 이상 급등하고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하며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보인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37.86(1.57%)포인트 상승한 2442.01을 나타냈다.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 1452원을 나타냈다. 조현호 기자 hyunho@ (이투데이DB)

저항이 없다.

지난 27일 원·달러 환율이 약세를 거듭해 장중 1500원 선도 위협하는 모습을 보고 서울외환시장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개장 후 제동도 걸리지 않고 단숨에 1486원까지 치솟았다. 1480선이 깨진 것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3월 16일 1488원) 처음이다. ‘권한대행의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국정마비가 현실로 다가오자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화폐 가치가 추락을 거듭하는 것이다.

당장 다음 달 환율 상방은 1500원을 열어둬야 한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외환당국은 원화 가치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사실상 국정운영 ‘컨트롤타워’의 부재 속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체감 경기지표는 악화 중이다. 내년 1분기 국내 GDP성장률은 역성장 가능성이 커졌고, 수출경기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원화 ‘국정마비·강달러’ 안팎으로 날뛰는데…‘잠잠한’ 외환당국

29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27일 원·달러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70원 오른 1467.5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오전 한때 1480원 선으로 급등하며 1500원 턱 끝까지 치솟았지만,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 경계감 등이 확산하며 오후 들어 상승 폭이 잦아들었다.

원화는 올해 들어 180원 넘게 급등했고, 이중 절반에 가까운 80원이 최근 한 달 동안 상승했다. 계엄·탄핵으로 국내 정치 리스크가 불거진 데다 미국 경기의 ‘나 홀로 호조’를 바탕으로 미국 달러가 초강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배당락에 따른 연말 수급 요인까지 겹치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악화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비상계엄 이후 1400원이라는 레벨이 무너지며 환율 상승세가 확대되고 있다”며 “이번 사태로 수출 둔화와 내수 침체가 더욱 부진할 수 있는 불안감은 부각되고, 이를 완화해줄 정치적 안정은 어려운 상태다.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매파적 인하, 트럼프 당선으로 인한 물가 상승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들의 증시 이탈 가속화도 환율 약세를 부추긴다. 달러 강세에 따라 미국으로 자금이 유입되자 가뜩이나 연말을 맞아 장이 얇은 국내 증시는 외국인 매매 동향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27일 코스피 지수는 전일보다 1.02% 내린 2404.77에 마감했다. 코스피는 최근 10거래일 동안 이틀(18·23일) 빼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날 하루 동안 외국인은 약 200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국내 증시에서 이탈하는 흐름이 강해진 셈이다. 외국인투자자는 국내 주식을 팔아 얻은 원화를 통상 안전자산인 달러로 바꿔 보유한다. 이 과정에서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가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는 절하되면서 환율이 더욱 상승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당국도 속수무책 “지금은 총알을 아낄 때…달러 변곡점 대기 중”

원화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온통 비우호적임에도 불구하고 외환당국은 직접적 개입 대신 상황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원화 약세, 달러 강세가 극심한 현 상황에서는 시장 개입을 해도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은 올해 들어 환율이 급등할 때마다 각종 대책을 시도해왔는데, 여기서 개입하면 앞으로 환율이 더 오를 때 쓸 수 있는 카드가 남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다. 지금보다 환율 상단이 더 오를 가능성도 열어둔 셈이다. 이미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독주 현상은 심화하고 있고, 여기에 한국 혼자만 정치적 불안도 겹쳤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정치 리스크 때문에 지금은 (당국이) 개입을 해도 효과가 크게 나타나기 어렵다”며 “달러 흐름이 변곡점이 나와줘야 한다. 강달러가 조정이 올 때 외환당국이 달러 자금을 투입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달러화 강세가 멈출 줄 모르는 현 상황에서 총알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외환 개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대외신인도와 펀더멘탈(기초체력)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걸 생각하면 마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원자재를 수입하는 수입기업은 부품·원재료 가격이 올라가 완제품 가격에 반영되면 제품 경쟁력이 하락한다.

경제 전반 심리도 얼어붙고 있다. 12월 소비자심리지수와 경제 심리지수(ESI)는 11월보다 모두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 하락폭(12.3p)은 코로나19였던 2020년 3월(-18.3bp) 이후 가장 깊다. 반도체도 국내 GDP성장률의 역성장 발목을 잡는다. 내년 1분기 반도체업종의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는 64.4로 올해 4분기 135.2 대비 반토막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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