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과학기술계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

입력 2025-01-0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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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카르텔 전락’ 과학계 예산삭감 홍역
섣부른 의대 증원에 K-의료 무너져
가짜 과학 일소해 科技 토대 다져야

을사년 새해가 어수선하게 시작됐다. 느닷없는 비상계엄과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거리고 있다. 섣부른 의대 증원으로 시작된 의료 대란도 현재 진행형이고, 제주항공 참사의 뒷감당도 만만치 않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냉전 이후의 미국 일극(一極) 체제가 흔들리면서 전 세계가 각자도생의 길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 미국 차기 대통령도 “세상이 약간 미쳐가고 있다”고 했다. 지난 7일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식에서 만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을사(乙巳)년에 대한 기억도 편치 않다. 120년 전(1905년)에는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잃었고, 60년 전(1965년)에는 ‘한일협정’으로 홍역을 치렀다. 360년 전(1665)에는 ‘대(大)혜성’이 출현했고, 480년 전(1545년)에는 소윤이 대윤을 몰아낸 ‘을사사화’가 있었다.

2025년 을사년을 맞이하는 과학기술계의 현실이 암울하다. ‘역사에 남는 과학기술 대통령’을 꿈꾸던 윤석열 대통령의 과학기술은 절망적인 이변의 연속이었다. 결과적으로 과학자는 ‘카르텔(떼도둑)’로 전락했고, 의사는 ‘악마’가 돼버렸다.

과학자의 명예회복에 대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입장이 묘하다. 카르텔 발언은 언론의 무책임한 조작·왜곡이었고, 실제로 “카르텔은 없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줬다는 것이 공식 입장인 모양이다. 정작 용산 대통령실에서 시작된 ‘카르텔’ 발언이 연구 현장의 과학자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는 공식적인 해명은 끝내 외면하고 있다.

첨단 바이오, 인공지능 반도체, 양자기술의 ‘3대 게임체인저’가 위태롭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인공지능위원회·국가바이오위원회·국가우주위원회도 좌초해 버렸다. 과학기술 출연연도 작년의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관장이 공석인 출연연도 적지 않다. 그런 출연연을 “국제 사회가 부러워하고 있다”는 정부의 인식은 황당한 것이다.

학생들의 ‘의대 몰빵’도 심각하다. 의대로 빠져나가는 학생들 때문에 자연대·공대가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다고 의사의 길이 활짝 열려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총선용으로 내놓았던 ‘의대 2000명 증원’ 카드가 치명적인 독약이 돼버렸다. 총선은 여당의 참패로 끝났고, 의대와 의료 현장은 회복이 어려운 쑥대밭으로 변해버렸다. 정부가 10년 후의 의사 증원을 핑계로 당장의 K-의료를 참혹하게 무너뜨렸다. 그런 현실을 알지 못하고 무작정 의대로 몰려가고 있는 수험생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때는 아니다. 작년의 수출액이 역대 최대인 6833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8.2%나 늘어났고, 순위도 세계 8위에서 6위로 뛰어올랐다. 반도체가 1419억 달러로 부동의 1위를 지켰고, 자동차(708억 달러)와 석유화학제품(480억 달러)이 뒤를 이었다. 2년 연속 적자였던 무역수지도 697억 흑자로 돌아섰다. 부진했던 세계 경기와 극단적으로 혼란했던 국내 정세를 고려하면 상당한 성과였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버린 반도체특별법과 전력망특별법의 빠른 입법이 절실하다. 연구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연구자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제 완화의 법제화 방법은 국회가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다. 전력망은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 단지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자칫 동해안의 화력발전·원전은 물론 서남부 지역의 태양광·풍력 설비까지 모두 무용지물이 돼버릴 수도 있다.

기적 같은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석유화학 산업의 현실도 심각하다. 중국과 중동 산유국만 탓할 일이 아니다. 국민 건강과 환경을 해치는 공해 산업이라는 사회적 거부감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지난 2년 동안 70% 이상 올려버린 전기요금도 부담스럽다. 지나치게 엄격한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은 사실상 ‘화학산업 퇴출법’이다. 핵심 국가기간산업의 경쟁력을 지켜내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2025년 을사년을 21세기의 도약을 위한 진정한 ‘과학기술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과학자와 의사의 명예회복이 그 시작이다. 7500명이 북적이게 되는 의대와 전공의가 떠나버린 의대부속병원(상급종합병원)도 적극적으로 되살려야 한다. 불통·독선·독단으로 밀어붙인 디지털 교과서, 늘봄학교, 유보통합, 의대 증원을 비롯한 교육·의료 개혁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엉터리 ‘가짜’ 과학이 우리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드는 노력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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