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을 맞으며 진료실로 출근하는 길이었다. 초등학교 동창들과 덕담을 나누는 문자가 단톡방에 올라오는 중이었다. ‘나는 지금 출근하면서 아침해를 보고 있어.’ ‘자식, 좋겠네. 아직 일할 직장도 있고, 나는 작년말부터 노느라 죽을 지경이다.’ 순간 아차 내가 경솔한 문자를 보냈구나 하는 후회와 미안함이 몰려 왔다. 적지 않은 친구들이 직장을 떠나게 되었다. 또, 여기 저기 아프다는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아주 가끔씩 갑작스러운 부고에 놀라기도 한다.
그렇다. 나는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더 적은 그렇고 그런 상태인 것이리라. 비교적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진료실에서 노년의 외로움과 적적함을 토로하는 환자분들을 대할 때, 그 아픔에 절실하게 공감이 가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평생 젊을 줄로만 알았었나봐. 그때는….’
A 씨는 올해로 아흔이 되었다. 게다가 치매도 아직 안 오고, 산 중턱 둘레길 정도는 거뜬히 다니는 체력이다. “아버님,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올해로 아흔 되셨네요.” “그러면 뭐하나, 마누라도 먼저 가고, 친구들도 거의 세상을 하직하거나 치매로 나를 알아보지도 못해.” 순간 그의 외로움이 나에게 바로 전달되며, 나 또한 마음이 황폐해짐이 느껴졌다.
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또한 역시. 한동안 우리는 침묵 속에 각자의 비애를 공유하고 있었다. 위로의 말도 따듯한 포옹도 없었다. 좁은 진료실에서 서로가 내뱉고 들이쉬는 공기만을 공유한 채.
‘우리 같이 늙어가요. 어르신.’ 떠나는 그의 굽은 어깨를 바라보며, 동지가 있어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감을 느꼈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