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눈] 끊어진 연대…같이 좀 삽시다

입력 2025-01-0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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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인구정책전문기자·정책학 박사

1960년대 출생해 1980년대 대학에 입학한 86세대는 공과가 명확하다. 군사독재 종식과 정치 세대교체를 이끌었으나, 그들로부터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공은 공대로 두고 과를 보자. 86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운이 좋은 세대로 꼽힌다. 1980년대 중후반 3저(저환율·저유가·저금리) 호황을 바탕으로 고속 성장한 기업들은 선심 쓰듯 사람을 뽑고, 월급을 올렸다. 월급이 얼마나 가파르게 올랐으면 정부가 나서서 인상률을 통제했다. 가장 큰 수혜자는 86세대다. 대학 졸업장만 가지고 기업을 골라 취업할 정도였다.

이들은 외환위기도, 글로벌 금융위기도 피해갔다. 경기가 어려울 때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줄이고 만년 과장으로 대표되는 장기근속 중간직급을 정리한다.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리·과장급이던 86세대는 정리해고를 피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땐 신규 채용이 얼어붙었지만, 외환위기 때만큼 정리해고가 심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기도 버텼다. 이때 86세대는 정리해고 대상이 아닌, 정리해고 대상을 정할 위치에 올라 있었다. 모든 86세대가 이처럼 운이 좋진 않았지만, ‘운 좋은 사람’이 86세대만큼 많은 세대는 없다.

이들은 운으로 탐욕을 채웠다. 기업에선 노동조합을 통해 기득권을 강화했다. 노동비용이 커진 기업들은 정규직을 비정규직과 사내하청으로 대체했다. 대기업·정규직 중심 노조는 비정규직·사내하청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외면했다. 기업 밖에선 주택·토지를 긁어모아 집값 폭등을 초래했다.

극단적 저출산의 출발도 86세대다. 합계출산율 증감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출구 없는 저출산의 늪에 빠진 건 2001년부터다. 이때 86세대는 30대였다. 인구 억제기도 아닌데, 86세대는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를 미덕으로 여겼다. 하나뿐인 자식을 과보호하며 사교육 등 인적자본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사교육 지옥’이 됐다. 권력도 독식했다. 민주화를 계기로 정치 세대교체를 이룬 과거의 386은 486을 거쳐 586이 돼 지금도 정치적, 사회적 지위를 독점하고 있다.

이런 86 기득권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 양대 노동조합총연맹(노총), ‘강남 좌파’ 일색의 시민단체로 요약된다. 이들은 세대 간 연대를 끊었다. 내쫓기듯 회사에서 짐을 쌌던 선배들, 대학 졸업기와 외환위기·금융위기가 겹쳐 비정규직을 전전하거나 노량진·신림동 고시촌의 고인물이 된 후배들을 외면했다. 세대 안에서도 학벌, 지역 등을 중심으로 ‘급’을 나눴다.

86세대는 여전히 ‘적당히’를 모른다. 30~34세 인구가 정점기에 진입했는데도 임금체계 개편 없는 정년 연장만 외치고, 자신들의 연금액을 높이는 대가로 미래세대에 막대한 보험료 부담과 부채를 떠넘기는 ‘소득보장형 연금개혁’을 주장한다. 일부에선 이것으로 부족하다며 기초연금을 더 올리자고 한다. 후배세대, 미래세대에 대한 연대의식도, 부채의식도 없다.

그런데도 86세대가 버티는 건 40년 전의 공 덕이다. 다만, 독재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정치·사회의 주축이 되면, 86세대의 공은 모두 과로 희석될 거다. 그때가 되면 86세대는 민주화 세대가 아닌 적폐 세대로 불릴 것이다. 그러니 호소한다. 제발 적당히 합시다. 이제 좀 같이 먹고 삽시다. j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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