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53. 우크라이나에 유럽평화유지군 파병될까

입력 2025-01-0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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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평화 맞교환…안전보장이 관건
獨·佛 리더십 ‘흔들’ 정국향방 안갯속

을사년 유럽의 시계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종전 가능성부터 독일의 조기 총선과 프랑스 정국 등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20일 취임함에 따라 3년이 거의 다 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주축이 돼 휴전을 감시할 평화유지군 파병 가능성도 거론된다. 독일이 2월 23일에 조기 총선을 치른 후 경제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지도 관심사다.

유엔군 대안으로 ‘휴전감시’ 거론

트럼프는 유세 때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루 만에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5일 대선에서 승리 후 트럼프 당선자 측은 종전을 위한 여러 가지 구상을 동맹국들과 논의했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불허,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에 유럽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윤곽이 잡혔다.

러시아의 푸틴은 나토의 동진을 우크라이나 침략 명분으로 내세웠기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불허를 제시하지 않고는 협상 자체가 어렵다. 전쟁 후 러시아가 점령한 땅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독재자에 대한 유화책이지만 트럼프 2.0이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최선의 안전보장책은 이스라엘처럼 미국이 첨단 무기를 지원해줘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방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나 현실성이 낮다. 대신 트럼프는 이 전쟁은 유럽의 전쟁이고 유럽의 안보 위협이기에, 유럽에 강력한 안전보장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의 평화유지군 파병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병하려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와 중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이기에 불가능하다. 따라서 러시아의 점령 영토를 인정하고 인근 수십 킬로미터에 비무장지대를 설치한 후 EU 회원국들이 휴전을 감시하고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할 평화유지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12일 폴란드를 방문해 투스크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방문 일주일 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재개관식에서 마크롱은 트럼프 및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과 휴전 방안 등을 논의했다. 투스크 총리는 “유럽의 평화유지군 파병이 안건이었지만 현재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유럽 주도의 평화유지군 파병은 실현된다면 처음이다. 트럼프가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에 국내총생산 대비 2% 국방비 지출보다 더 많은 최소 3%를 요구하겠다는 보도가 자주 나온다. EU로서는 트럼프의 이런 요구에 대응하고 트럼프발 관세전쟁에서 유리한 협상 고지를 차지하려면 평화유지군 파병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EU 27개 회원국의 20%를 차지하는 최대의 경제대국 독일도 평화유지군 파병에서 비켜갈 수는 없을 터인데 경제가 심상치 않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그는 최근 "전례 없는 영향력을 보면 트럼프 당선인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적임자"라는 등 전쟁 종식을 위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브뤼셀/AP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그는 최근 "전례 없는 영향력을 보면 트럼프 당선인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적임자"라는 등 전쟁 종식을 위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브뤼셀/AP뉴시스
獨, 조기총선에 경제도 지지부진

독일의 로버트 하벡 경제기후보호장관은 세 달 전 경제전망에서 올해 1.1% 성장을 전망했다. 그러나 지난달 독일의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를 비롯해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잘해야 0.1% 성장에 그치리라는 비관적 경제전망을 내놨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본격 시작되면 0.6%포인트 성장률이 내려가 -0.5%의 경기침체를 예상했다. 이럴 경우 2023년 -0.3%, 2024년에 -0.2%(예상)에 이어 3년 연속 경제가 마이너스다.

경제 하면 독일이었는데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독일 경제가 영 말이 아니다. 천연가스 가격이 최소 2배 이상 올랐고 독일 최대 시장 중국의 성장 둔화, 제조업 강국 독일에서 최대 산업인 자동차 제조업의 부진 등 여러 요인이 겹쳤다. 설상가상으로 중심을 잡아야 할 정치는 두 달 전 연립정부(연정)가 붕괴되어 다음 달 23일 조기 총선이 치러진다.

최소 세 달 넘게 제1야당 기민·기사당이 31~32%로 지지도에서 1위를 달린다. 반이민과 반이슬람을 앞세운 극우 독일대안당은 18%, 여당인 사회민주당이 16%, 녹색당이 12%에 그친다. 기존 정당들은 독일대안당과의 연정을 배제한다. 따라서 가능성이 제일 높은 연정 구성은 중도우파 기민·기사당과 중도좌파 사민당의 결합이다. 기민·기사당은 공약에서 법인세 및 소득세 감세와 규제완화, 정부지출 삭감 등을 제시했으나 사민당은 부자 및 대기업 증세,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처럼 극과 극의 공약을 내세운 정당들이 연정을 형성하려면 선거 후 최소 두 달 정도의 연정 협상이 필요하다. 이 협상에서 증세와 감세의 규모, 정부지출 삭감 규모,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재원조달 방법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독일 기본법(헌법)은 연방정부에 연간 순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0.35%를 초과하지 않도로 규정해 사실상의 균형재정을 요구한다. 독일은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GDP 대비 재정적자가 2.5% 정도로 EU 회원국 가운데 재정이 매우 견실하다. 그런데 이런 균형재정 때문에 돈이 있어도 지갑을 열지 못한다. 기민·기사당은 공약에서는 균형재정을 준수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사민당은 인프라 투자를 위해 이 규정의 완화에 역점을 뒀다. 연정이 성립하려면 이런 대립적인 입장을 어느 정도 조율해야 한다.

레임덕 빠진 프랑스도 ‘첩첩산중’

원래 기민·기사당은 지난달 중순 공약집을 발표하기 전에는 균형재정의 완화에 유연한 입장을 취했다. 집권하더라도 국방비와 인프라 지출이 필요한데 이 조항 때문에 정부 재정을 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약집에서는 지지층을 규합하기 위해 균형재정을 지키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전문가들은 연정이 구성되려면 균형재정 조항에서 기민·기사당이 양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기민·기사당과 사민당은 우크라이나 지원에는 이견이 없으나 파병에는 미온적이다.

독일과 함께 유럽통합을 이끌어 온 프랑스의 정국은 속시원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총리가 4번이나 교체됐다.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에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소수당의 총리 운명이 야당의 손에 달렸다. 일부에서는 마크롱이 조기 사퇴해 대선을 미리 치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가능성이 낮다. 작년 7월 그는 조기 총선이라는 도박을 감행해 레임덕에 빠졌다. 2027년 5월 임기 전에 물러난다면 극우정당 국민연합(RN)에만 좋을 터인데 또다시 벼랑끝 승부수를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독일은 조기 총선으로 정치가 차차 제 자리를 찾고 리더십을 회복할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의 정국은 계속해 불확실하다. 트럼프 복귀로 그 어느 때보다 ‘유럽’은 리더십이 필요한데 말이다. 대구대 교수(국제정치학)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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