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계열사 잇달아 부진…올해도 부진
신동빈 회장, AI 쇼케이스 참석...롯데이노베이트 설명 경청
유동성 위기설 이후 처음으로 열린 롯데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계열사 대표들이 일제히 말을 아꼈다. 지난해 연말 그룹 유동성 위기설이 확산한 만큼 회의장은 입구부터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9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25 상반기 롯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회의)'에는 신동빈 롯데 회장을 비롯해 롯데지주 대표이사 및 실장, 사업군 총괄대표와 계열사 대표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11월 정기 인사에서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한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도 자리를 함께한다. 신 실장은 지난 2023년부터 VCM에 참석해왔다.
롯데 VCM은 매년 상(1월)·하반기(7월)에 나눠 진행하는데, 상반기는 통상 전년도 경영 성과를 돌아보고 올해 목표를 수립하는 자리다.
이날 회의장에는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이 2시 회의 시작 전 11시께 일찌감치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25'에 참석했던 신 부사장은 귀국 후 바로 회의장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뒤이어 유통군에서는 남창희 롯데하이마트 대표, 강성현 롯데마트·슈퍼 대표,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 김동하 롯데면세점 대표, 정호석 호텔롯데 대표 등이 굳은 표정으로 차례로 입장했다. 남창희 대표는 이날 VCM의 내용에 대해 "다음에 말하겠다"고 말했고, 강성현 대표는 "가이드가 없어서... (말씀드리지 못한다)"고 구체적인 대답을 피했다.
식품군에서는 이창엽 롯데웰푸드 대표, 박윤기 롯데칠성음료 대표 등이 참석했지만 모두 말을 아꼈다. 타마츠카 겐이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도 이날 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연말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이며 그룹이 해체할 수 있다는 정보지(지라시)가 증권가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위기설의 핵심은 롯데케미칼이 과거 발행한 2조450억 원 규모의 회사채에 대해 재무약정 위반 사유가 발생하며 불거졌다. 안팎으로 불안이 확산하자 롯데그룹은 설명자료를 내고 "부동산 자산이 56조 원, 가용예금은 15조4000억 원으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도 롯데그룹에 당장 유동성 위기가 올 가능성은 낮다고 봤지만 유동비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리스크로 보고 있다. 유동비율은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을 1년 내 갚아야 하는 유동부채로 나눈 값이다. 100% 이상이면 안정적, 200% 이상이면 이상적으로 평가한다. 롯데케미칼의 유동비율은 지난해 말 150%에서 올해 9월 말 111%까지 떨어졌다. 유통 계열사의 경우 경기 불황으로 올해도 녹록지 않을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도 이날 회의장 앞에선 신 회장의 주문에 맞춰 전사적으로 추진 중인 AI 기술 관련 쇼케이스가 열려 미래 먹거리를 찾으려는 모습도 포착됐다. 쇼케이스에선 롯데케미칼, 롯데이노베이트, 대홍기획, 롯데건설 등 9개 계열사가 AI 우수 활용 사례들을 소개했다.
특히 신동빈 회장은 롯데케미칼의 ‘AI 기반 컬러 예측 시스템’ 설명을 특히 경청했다. 이 시스템은 AI를 활용해 고객이 원하는 플라스틱 컬러 조합을 빠른 시간 내에 찾아 내는 것으로 롯데케미칼은 이를 통해 개발생산 속도 증대, 엔지니어 기술역량 향상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AI 내재화에 집중하자"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신 부사장도 CES 2025에서 롯데이노베이트의 부스를 찾아 메타버스 플랫폼 '칼리버스'와 전기차충전 플랫폼 EVSIS의 전시관을 둘러보며 첨단기술 동향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