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학 폐교 시 대규모 청년인구 유출에 인근 상권 마비…지역 중기 인력난도 심화
글로컬 대학 지정 등 지방대학 경쟁력 키우고 평생교육도 대안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 경쟁력 하락에 재정지원 제한 대학 선정까지 겹치며 재정 한계로 파산 선고를 받은 한 지방 대학교 인근 상인의 푸념이다.
부실 지방대학의 구조조정 논의가 시작된 지는 이미 오래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이 커지면서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지방대학 문이 닫힐 것이라는 '지방대학 벚꽃엔딩'이 현실화하고 있다.
문제는 대학이 문을 닫으면 주변 상가도 문을 닫게 돼 지역경제에 먹구름이 끼는 것은 물론, 많은 교직원이 실직의 고통을 겪게 된다는 점이다.
지방대학의 붕괴는 지역경제와 지역사회의 붕괴로 이어지고, 나아가 지방 전체의 소멸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가항력인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대학 재정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통한 폐교를 결정하는 것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방대학 폐교는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전국에서 문을 닫은 대학은 △4년제 11곳 △전문대 6곳 △대학원대학 3곳 △기타 대학 2곳 등 22곳에 달한다. 이 중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 대학은 2곳(인제대학원대학교·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에 불과하다. 폐교 대학들은 대부분 신입생 모집난에 따른 적자 운영과 재정 결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문을 닫았다.
지난해 폐교 결정이 난 강원 태백 강원관광대는 1995년 태백시의 첫 대학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 등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다 2021학년도부터는 간호학과만 남겨놓고 나머지 과를 모두 폐과했다. 2023학년도에는 간호학과마저 모집정원(98명)을 채우지 못했다.
2023년 문을 닫은 경남 진주 한국국제대는 무리한 4년제 대학 추진과 경영진 비리, 교육부의 대학평가 철퇴 등으로 폐교했으나, 그 바탕에는 역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 경쟁력 하락이 깔려 있다. 2018년 738명이던 한국국제대 정원은 폐교 당시 393명으로 줄었고 신입생은 27명, 충원율 6.9%에 그쳤다.
저출산 심화로 전망도 암울하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국내 입학자원은 57만여 명으로 대학 입학정원 55만 명보다 많았다. 모든 대학이 정원을 채우고도 2만 명이 남는 수준이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입학 자원이 4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입학정원 49만3000명을 크게 밑돌았다. 약 10만 명의 학생이 모자란 것이다. 이 추세라면 2040년 입학자원은 28만 명으로 예측되며 이는 수도권 대학과 지방 국립대 입학 정원인 26만 명 수준에 그친다. 지방 사립대 전체가 폐교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다.
또한, 한국경제연구원이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에게 의뢰한 '지역인재육성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지방대학 발전 방안 보고서'를 보면 '출생아 수 25만 명·대학 입학정원 47만 명(2022년 기준)'이 유지될 경우, 2040년 초에는 50% 이상의 대학이 신입생을 채울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병주 영남대 교수는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고등교육 재정지원 전략과 사립대학 구조개선' 토론회에서 "만 18세 입학자원은 올해 43만7706명에서 오는 2040년 26만1428명으로 60% 감소할 것"이라며 "만 18세 인구가 급감하는 2030년을 기점으로 등록금 의존도가 높은 대학들의 재원 부족이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각 집계 자료마다 숫자 차이는 있지만 모두 공통되게 지방 대학 위기를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지방대학의 위기는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을 부추긴다. 학생들은 폐교 위기로 불안한 지방대학을 가느니 재수, 삼수를 하더라도 수도권으로 향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대학이 사라지면 지역 소멸은 불가피하다. 직접적으로는 교직원들이 일자리를 잃는다. 인근 상권의 소상공인들 역시 한꺼번에 생계를 위협받는다. 지역 부동산도 휘청이고 지역 중소 규모 업체에 적기 공급되던 전문 인력도 사라지는 등 사회·경제적 타격이 적지 않다.
실제로 전북 남원에서는 2018년 서남대의 폐교로 교수와 직원 300여 명이 실직했고, 주변 상가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남원시는 서남대 폐교로 인한 남원시 연간 소득 감소액이 최대 344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으며, 인구수는 불과 2년 만에 2000명 넘게 줄었다.
한국은행 강릉지역본부에 따르면 전국의 대학 입학 정원이 8만3000명 줄어든다고 가정했을 때 강릉지역 소득은 약 220억 원, 취업자 수는 720명 줄 것으로 추산했다.
지방대학 폐교에 따른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교육부는 '글로컬대학 30' 정책을 추진, 비수도권 대학 살리기에 나섰다. 글로컬은 세계화를 뜻하는 글로벌과 지역화를 뜻하는 로컬의 합성어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격차 등 위기 상황에 대응해 대학과 지역사회 간 파트너십을 맺어 글로벌 수준의 동반성장 견인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대학 재정지원 사업과는 거리가 있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10개교를 선정했으며, 올해와 내년 각각 5개교를 선정해 총 30개교에 3조 원을 투자한다. 글로컬대학으로 선정되면 5년간 약 1000억 원 정도를 지원받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강화해 지역 인재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경쟁력 있는 지방대학을 육성, 지역의 산업·경제·문화 분야 등에서 기여도를 높인다.
이와 함께 인구와 지역발전을 위한 전문 정부부처의 설립을 통한 체계적인 정책 집행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양 교수는 "프랑스가 2020년 ANCT라는 국가지역통합청을 만들어 범정부 차원의 지역 균형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인구 및 지역발전 미래부(청)'(가칭)처럼 주무 행정부처를 설치해 지역 균형발전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재정 지원이 실질적인 성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지방대학의 특성화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과감한 지방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책무성도 강화하는 성과체계 마련도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고령화 사회에 맞춘 평생교육도 대안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유럽이나 북미의 여러 대학은 고령친화대학(AFU·Age Friendly University)이라는 새로운 대학을 통해 지역사회 중년층 및 고령자에게 평생학습을 포함한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라며 "한국의 지역 사립대학 역시 교육을 희망하는 성인 학습자를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교수들이 대학은 학위기관이지 직업훈련기관이 아니라며 지방대를 평생교육기관으로 전환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지역 대학이 인구 감소에 따른 위기에서 생존하려면 평생교육기관과 창업허브 등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