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이 뭐길래…아시아권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 교체 수난사 [이슈크래커]

입력 2025-01-09 16:46 수정 2025-01-0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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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에 또 다른 흑역사를 남긴 위르겐 클린스만 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도하/AFP연합뉴스)
▲한국축구에 또 다른 흑역사를 남긴 위르겐 클린스만 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도하/AFP연합뉴스)

해가 바뀌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회장 선거에 나선 후보 중 한 명인 허정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불공정한 선거 관리를 이유로 낸 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이 선거 하루를 남기고 법원에서 인용됐는데요. 국민적 비난을 받는 축구협회의 정상화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서 제2의 도약이 성공했음을 세계 축구에 증명했습니다. 파울루 벤투 감독과의 4년 동행으로 선수비 후역습, 이른바 ‘뻥축구’가 아닌 점유율 축구로도 16강 진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죠.

빛나던 시기가 빠르게 끝나고 한국축구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이른바 ‘클린스만 사태’가 원인을 제공했는데요.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무리한 선임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의 부진한 경기력과 성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했지만 위약금 논란이 불거지며 축구협회는 또다시 국민의 질타를 받았죠.

지금까지 위기가 이어진 것은 이후 이어진 ‘홍명보 선임 사태’로 축구협회가 일을 더 키운 것이 결정적이었지만, 결국 협회의 이름값만을 고려한 감독 선임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 됐습니다.

축구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최고 결정권 가진 영향

사실 이는 비단 한국축구만의 문제가 아닌데요. 아시아권의 여러 국가대표팀이 이와 비슷한 문제로 몸살을 앓았거나 앓고 있고, 또 앓을 예정이죠. 적지 않은 아시아권 축구협회들의 최고 결정권자가 축구 경력이 일천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유로 꼽힙니다.

정몽규 회장, 에릭 토히르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장은 기업가 출신이죠.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협회는 왕실의 입김에 크게 좌우되고 있어요. 이렇게 되니 감독 선임에 있어 그들의 전술적 능력, 팀과의 조화 여부, 현재 능력보다는 화려한 경력을 우선시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시아권 축구대표팀의 같으면서도 다른 감독 교체 수난사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로베르토 만치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로베르토 만치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실패한 만치니를 연봉 2500만 달러에 영입한 사우디

사우디 국가대표팀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성공의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비록 1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에르베 르나르 감독의 지휘 아래 대회 우승팀인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2-1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르나르 감독과 협회 간 불화설이 지속해서 제기됐고, 결국 르나르 감독이 프랑스 여자 대표팀에 취임했어요. 이에 사우디 축구협회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로베르트 만치니 감독을 연봉 2500만 유로라는 파격적인 금액에 선임했죠.

만치니 감독의 이름값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는 직전 3개 클럽팀에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또한, 직전 팀이었던 이탈리아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진출에 실패한 점을 고려하면 무모한 선임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이외에도 사우디 축구협회는 간섭이 심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만치니 감독의 성격상 전임 감독인 르나르보다도 충돌할 일이 많을 것이란 관측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그의 선임을 밀어붙인 사우디는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16강 토너먼트 진출에 그치는 굴욕을 당했죠. 선수들이 만치니의 전술 지시를 무시한다는 등 잡음도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결국, 만치니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에서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경질당했는데요. 위약금만 8400만 달러에 달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후폭풍이 엄청났죠.

▲필립 트루시에 전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필립 트루시에 전 베트남 국가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동남아 챔피언에서 동네북으로…필립 트루시에의 베트남

박항서 감독의 지휘 아래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은 성장을 거듭해 동남아 축구 패권을 가져오는 등 수많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2018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스즈키컵(현 미쓰비시컵) 우승 및 2020·2022 대회 준우승, 2019·2021 동남아시안 게임 우승, 베트남 역사상 첫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 및 첫 승 성공, 베트남 역사상 첫 피파랭킹 두 자릿수 진입(96위) 등 팀이 급속도로 성장했죠.

박 감독이 사임한 후 베트남은 일본 대표팀을 이끌고 2000 아시안컵 우승, 2001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 2002 월드컵 16강 진출의 업적을 쌓은 필립 트루시에를 후임 감독으로 선임합니다. 베트남으로서는 선임할 수 있는 감독 중 가장 이름값 있는 감독을 선임한 것이지만, 그는 2002년까지의 성공 이후 20년 가까이 실패만 거듭한 감독이었습니다.

2003년부터 2015년 사이 7번이나 팀을 옮긴 떠돌이 감독이었고, 2019년 베트남 19세 이하(U-19) 팀을 맡기 전까진 4년간 감독직을 맡지 못했죠. 2023년 베트남 대표팀을 맡기 전 그의 마지막 성인팀 감독 경력은 2015년에서 멈춰 있었어요. 2002년의 성공으로 인한 이름값이 아니었다면 선임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의 지도 아래 베트남은 추락을 거듭했는데요.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선 3전 전패로 조별리그 탈락했는데, 그중 한 번의 패배는 항상 쉽게 이겨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인도네시아에 당했죠. 이후 시작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는 졸전을 거듭하다 다시 만난 인도네시아에 2연전 모두 패하며 탈락 위기에 몰렸습니다. 결국, 베트남 축구협회는 트루시에를 약 1년 1개월 만에 경질할 수밖에 없었죠.

▲황선홍 전 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황선홍 전 대한민국 U-23 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40년 만의 진출 실패 비극…대한민국 올림픽 역사에 오점을 남긴 황선홍

클린스만-홍명보 사태에 잊힌 상태이지만, 대한민국 올림픽 팀(U-23 팀)을 맡았던 황선홍의 선임 역시 한국축구의 시스템적 위기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권 진입에 실패한 대한민국 U-23 팀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중간 목표, 2024 파리 올림픽 진출 및 메달권 진입을 최종 목표로 새로운 감독을 물색했어요. 축구협회의 선택은 포항 스틸러스에서 패스 축구로 K-리그1을 제패했던 황선홍 감독이었죠.

황선홍 감독의 경력과 이름값이 U-23 팀 수준에서는 분에 넘치는 수준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의 커리어하이 시즌은 2013년으로 K리그1과 한국 축구협회(FA)컵을 모두 우승하며 포항 스틸러스를 2관왕으로 올려놓았어요. 하지만 그는 2013년의 전성기 이후 FC서울, 대전 하나 시티즌 등을 거치며 추락만 거듭하던 감독이란 게 문제였죠.

선임 과정이 알려지며 축구팬들의 비난은 더 켜졌습니다. 이미 갖춰져 있던 감독 선임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정몽규 회장의 직권 명령으로 황선홍 감독이 선임됐기 때문이죠.

황선홍 감독은 자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잠시 가라앉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팬들과 전문가들은 감독의 실력이 아닌 선수 체급 차를 통한 우승이었다며 올림픽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고, 이는 곧 현실이 됐어요.

올림픽 진출을 위해서는 2024 AFC U-23 아시안컵에서 3위 안에 들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U-23 팀은 8강전에서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 U-23에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죠.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40년 만에 올림픽 진출에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이름값만 믿고 현재의 능력을 등한시한 협회의 무리한 선임이 빚어낸 참극이었어요.

▲신태용 전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신태용 전 인도네시아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또 다른 아시아팀 흑역사 될까…신태용 경질한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축구협회는 6일 신태용 감독을 전격 경질했어요. 2024 미쓰비시컵에서의 부진이 표면적인 이유였죠. 하지만 이 대회에 인도네시아는 유소년을 주축으로 선수진을 선발한 점을 고려하면 이는 좋은 핑계에 불과했다는 평가입니다.

후임 감독으로는 네덜란드의 파트릭 클라위버르트가 선임됐어요. 클라위버르트는 선수 시절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등 선수 경력은 화려하지만,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습니다. 현지에서는 그가 선임된 것은 선수 시절 명성이 결정적이었다고 추측하고 있죠.

현지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에릭 토히르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장은 최근 2~3년 사이 네덜란드 혼혈 출신 선수들이 귀화해 선수단의 주축이 되며 이에 걸맞은 명성 있는 네덜란드 출신 감독 선임을 지속해서 원했다고 합니다. 그의 선택이 옳았을지는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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