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전환하며 화려하게 부활
히타치, 사업 부문 과감히 정리하는 구조개편
독립적인 이사회가 회사의 개혁 방향성 지지
올해 초 산업계를 관통하는 단어는 ‘위기’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제조산업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위 삼성전자마저 위기설에 휩싸인 가운데 지난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흥미로운 보도를 했다. 삼성전자가 일본 기업 소니와 히타치제작소에 대한 연구에 나섰다는 것이다. 소니와 히타치의 공통점은 최근 20년 사이 존폐위기를 극복하고 화려하게 부활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소니와 히타치를 연구하며 어떤 해법을 찾았을까.
소니는 한때 트랜지스터라디오, 워크맨, TV, 디지털카메라 등으로 글로벌 전자 산업을 선도하던 기업이었다. 그러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면서 2000년대 중반 들어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던 TV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밀려 경쟁력을 잃었고,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수요도 감소했다.
내리막길을 걷던 소니는 2012년 히라이 가즈오 최고경영자(CEO)임명을 계기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는 적자 사업부로 전락한 TV, 노트북 등 소니의 기존 주력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대신 스마트폰과 자율주행차 핵심부품 ‘이미지 센서’의 수요가 증가하는 점에 주목해 이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 글로벌 1위 자리에 회사를 올려놨다.
히라이의 뒤를 이어 2018년 임명된 요시다 겐이치 CEO는 게임·영화·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사업에 집중했다. 특히, 플레이스테이션 사업부를 강화하며 게임 콘솔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구축했다. 이는 소프트웨어 및 온라인 서비스 구독 모델로 확장되며 소니가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모한 소니는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달 말 소니의 주가는 1958년 상장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 시가총액 규모로는 도요타,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에 이어 3위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니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쪽으로 완전히 돌아서면서 다시 잘 나가는 기업이 됐다”며 “삼성전자는 소니가 왜 하드웨어를 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니의 뒤를 이어 일본 시가총액 4위인 히타치는 또 다른 위기 극복의 모범사례다. 히타치는 지난 1년간 주가 상승률이 67%에 이를 정도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히타치는 한때 일본을 대표하는 복합 기업으로 가전제품부터 고속철도, 엘리베이터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을 펼쳐왔다.
그러나 히타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경영난에 빠졌다. 전통적인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 모델이 한계를 드러내자 히타치는 미래지향적인 사업 구조로 체길 개선에 나섰다. 수익성이 낮은 기존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정보기술(IT), 에너지, 교통 등 고부가가치 사업에 역량을 집중했다.
히타치는 지난 15년 동안 사장이 4번 바뀌는 가운데서도 구조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왔는데 그 배경으론 ‘독립적인 이사회의 역할’이 꼽힌다. 히타치의 이사회는 4분의 3가량이 사외외사로 구성돼 높은 독립성을 가졌다. 이들은 CEO 선입과 인수합병(M&A) 등 주요 사안에 매우 철저한 심의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거수기 역할을 하는 국내 대기업의 이사회와는 다른 모습이다. 김 교수는 “국내 제조업이 위기를 맞은 원인 중 하나는 조직의 관료화”라며 “관료화된 조직 문화가 혁신을 가로막고, 새로운 기술 개발보다는 기존에 잘하는 것으로 돈 버는 데만 집중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바로 혁신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전체적인 사업 방향성을 다시 잡고 그에 따른 대대적인 구조 개편을 벌여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