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세계의 눈길이 한국으로 쏠렸습니다. '현직 대통령 체포'라는 유례없던 일이 벌어졌기 때문인데요. 이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했습니다.
공수처는 이날 오전 10시 33분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윤 대통령에 대해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신병을 확보했는데요. 이후 곧장 윤 대통령을 이송, 윤 대통령이 탄 경호차량은 오전 10시 53분께 정부과천청사에 도착했죠. 공수처는 10시간 40분가량 조사를 벌인 뒤 윤 대통령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구금했습니다.
이 과정은 모두 '생중계' 됐습니다. 이날 오전 3시 20분께부터 긴박한 '체포 작전'이 시작된 만큼 뜬눈으로 이른 새벽을 보낸 시민들도 적지 않은데요. 침대와 거실, 출근길 버스와 지하철, 학교와 회사에서 TV, 스마트폰으로 긴장감 넘치는 관저 상황을 지켜봤죠.
현직 대통령 체포 시도 자체도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그 과정이 국민에 공개된 방식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각 언론사에선 속보와 사진을 쏟아냈을 뿐 아니라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전했습니다. 심지어 개인 유튜버들도 관저 근처로 몰려가 현장 분위기를 자신의 채널에 담기 위해 애썼죠.
이번에 공수처와 경찰은 최대 2박 3일 장기전을 불사해서라도 영장을 집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이번 체포영장 집행에 서울·경기남부·경기북부·인천청 안보수사대 및 광역수사단 인력 1000명을 차출했는데요. 공수처도 처·차장 포함 검사·수사관 현원(52명)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40여 명을 집행 현장에 투입했습니다. 1차 체포영장 집행 시도가 있었던 3일에는 경찰 인력 120명, 공수처 인력 30명 등 150명이 투입된 바 있는데요. 2차 집행엔 인원을 8배 이상 늘려 윤 대통령 측을 압박한 겁니다. 여기에 밤새 대통령 관저 인근을 지킨 윤 대통령 탄핵·체포 찬반 집회 참가자가 6000여 명에 달한 만큼 경찰은 기동대 54개 부대·3200여 명을 투입해 현장관리에 나섰죠.
2차 체포영장 집행은 순조로웠습니다. 3일 공수처와 경찰이 약 5시간 동안 경호처와 대치하다 끝내 철수했던 것과 매우 다른 모습이었는데요. 우려했던 물리적 충돌도 발생하지 않았죠. 또 1차 체포영장 집행 시도 당시 관저 저지선에 '인간 띠'를 이룬 군 수도방위사령부 55경비단과 33군사경찰경호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병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은 국방부는 부적절한 조치였다며 2차 영장 집행에는 협조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죠.
체포 과정을 시간대별로 살펴보면, 공수처와 경찰은 이날 오전 4시 20분께 대통령 관저 인근에 집결했습니다. 약 1시간 동안 관저 경내에 진입할 준비를 마친 뒤 오전 5시 10분께 대통령경호처에 영장을 제시, 집행 협조를 구했죠. 다만 호위무사(?)를 자처한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국민의힘 의원 30여 명에게 가로막혔는데요. 이들은 "정당한 공무집행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죠. 주변 시위대가 몰려들면서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오전 7시께부터 경찰은 철조망을 제거하고 사다리로 차 벽을 넘기 시작해 관저로 이어지는 길에 발을 디뎠습니다. 관저 출입문을 통과하니 3차 저지선까지 돌파하는 건 시간문제였죠. 오전 7시 33분께 1차 저지선을 돌파했고, 7시 48분 2차 저지선을 우회해 7시 57분 철문과 차 벽이 쳐진 3차 저지선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어 공수처와 경찰은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관저 내부로 들어가 영장 집행과 관련한 협상에 돌입했습니다.
협상은 2시간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공수처와 경찰은 오전 10시 33분께 영장을 집행해 윤 대통령을 체포했는데요. 윤 대통령은 경호처 차에 탑승해 경기 과천시 공수처로 이송됐죠.
이어 공수처는 오전 11시부터 10시간 40분가량 조사를 벌였습니다. 현재 윤 대통령은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 구금된 상황입니다. 16일 공수처 조사를 거부, 구치소에 머무르는 중입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됐습니다.
특히 체포조가 사다리를 타고 관저에 진입해 1~3차 저지선을 돌파해 나가는 과정은 마치 대중이 드론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공개됐는데요.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남동 공관 지역 일대는 군사기밀 보호법상 제한보호구역입니다. 앞서 국방부는 2022년 8월 윤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 공관 지역 일대 13만6603㎡를 군사시설 보호법상 제한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바 있죠. 어떤 형태로든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수 없습니다.
그룹 씨스타 멤버 소유의 한남동 집이 최근 재조명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2023년 8월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수제'에는 '아침 먹고 가' 소유 편이 게재됐는데요. 당시 소유는 거실 창문을 열면서 제작진에게 "이쪽은 찍으면 안 된다"라고 부탁해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그는 "이상한 건 아니고 저기 앞이 윤 대통령님 집이어서 그렇다"고 부연해 놀라움을 자아냈죠.
장성규는 "웬일이야. 어쩐지 여기 올라올 때 경비가 있었던 게 대통령 사저여서 그랬구나"라며 "오가다가 (윤 대통령과) 마주친 적 있냐. 원래 마실 되게 잘 나오신다고 들었다. 온 김에 한 번 오시라고 해라"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죠. 당시 거실 창문은 모자이크 처리됐습니다.
촬영 금지와 더불어 관저 경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인근 건물 옥상 등은 경호처가 출입을 통제하고요. 관저 외곽까지 서울경찰청 202경비단이 접근을 막습니다.
이번에 언론사 사진·영상 기자들이 등산하면서(?) 사전 답사에 나선 것도 이 때문입니다. 관저 경내 일부라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명당'을 찾기 위해 공들인 거죠.
사진·영상 기자들은 체포 수일 전부터 관저와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유명 호텔, 리움미술관 인근 산책로, 매봉산 공원, 고층 건물 등 '직캠 명당(?)'을 섭외해놨다는 전언입니다. 성능이 좋은, 커다란 망원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짊어지고 해 뜨기 전 새벽부터 긴 시간 대기한 끝에 경내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죠.
금지인 곳을 촬영한 만큼, 법적 문제 소지가 없는 건 아닙니다. 관저 일대를 무단으로 촬영할 경우 군사시설 보호법 9조 제1항 제4호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1차 체포 시도 당시 관저 내부를 촬영하거나 윤 대통령의 산책 모습 등을 보도한 일부 언론과 유튜버 등을 이미 고발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보도 공익성을 고려해 위법성이 조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관저 내부가 아닌 외부 일부 모습이나 대통령 산책 모습만으로는 군사 기밀이 누설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거죠. 또 윤 대통령이 체포되면서, 관저 촬영 보도에 대한 법적 대응을 주도해온 대통령실이 소송전을 이어가거나 추가 고발을 할 동력은 떨어지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현직 대통령 체포로 한남동 관저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앞서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던 2022년 3월 "제왕적 권력의 상징, 구중궁궐(九重宮闕) 청와대를 떠나겠다"면서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 계획을 직접 발표한 바 있습니다. 취임 후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옮기면서 한남동 관저도 공사를 시작했죠. 같은 해 9월부터 이곳을 이용했습니다.
이미 당시부터 용산 대통령실에 대한 무용론이 제기돼 왔습니다. 도감청 의혹 등이 제기되는 등 보안 문제와 함께 업무·경호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졌죠.
윤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탄핵소추된 뒤엔 청와대 복귀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달 18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가 대통령실 이전"이라며 "청와대는 미국의 백악관처럼 대한민국의 상징인데, 그 상징을 옮기는 바람에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출범 당시부터 무너지고 야당에 깔보이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지 몰라도 청와대로 복귀할 것"이라고 강조했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대통령실이 대규모 예산을 들여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했음에도 여전히 청와대에서 행사를 열어왔다며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로 재이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복귀가 쉽진 않습니다. 70년 넘게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였던 청와대는 윤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전면 개방된 바 있는데요. 비용과 시간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경호·보안 시설로서의 기능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동시에 대통령 제2집무실이 들어서는 세종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하자는 주장도 나와 눈길을 끄는데요. 탄핵 심판 결과에 상관없이 차기 정부는 청와대 복귀도, 용산에 머물기도 부담일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