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침체에 빠진 건설업 구제를 위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상반기 조기 집행 카드를 내놨지만 업계 반응은 시큰둥하다. 예산 자체가 줄어든 데다 물가, 공사비 상승 등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감소폭이 더 크기 때문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올 상반기에 한 해 SOC 예산의 약 70%인 12조 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규모로 지난해 상반기(60%)보다 10%포인트(p) 늘었다. 1분기에 도로 2조5000억 원, 철도 2조1000억 원을 집행한다.
현장에서도 실제 집행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 예산도 상반기 최고 수준인 57%를 조기 집행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12조3000억 원 △철도공단 3조5000억 원 △도로공사 2조7000억 원 등이다.
업계에선 건설업 활성화를 위해 집행 속도를 높이는 정책에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 민간 건설투자가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SOC 예산이 감소하며 공공부문 투자까지 쪼그라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2010년 46조3000억 원이던 SOC 예산은 2021년 53조4000억 원까지 증가했으나 이후 감소세가 이어지며 2023년에는 42조6000억 원까지 줄었다.
최근 인건비와 공사비가 급증하면서 업계에서 실제로 느끼는 예산 감소 영향은 더욱 크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건설공사비지수는 지난해 11월 130.26으로 4년 전인 2020년 11월(100.97)보다 29.0% 상승했다. 대한건설협회 조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건설업 종사자의 하루 평균 임금은 27만6011원으로 집계돼 전년 동기(27만789원) 대비 1.93% 뛰었다.
건설공사비 변동에 따른 SOC 예산현액(그해에 실제로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은 2010년 60조4000억 원에서 2023년 33조1000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중앙정부의 SOC 물량이 절반으로 급감한 셈이다.
정부가 예산으로 편성된 금액을 다 못 쓰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2010~2023년 평균 SOC 분야 이월액은 8780억 원, 불용액은 1조3394억 원이다. 이월액과 불용액만 효율적으로 활용해도 SOC 투자금이 매년 2조 원가량 확충되는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실질적인 SOC 예산이 줄어든 만큼 추경을 통한 최소한의 재정투자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엄근용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SOC 투자 확대와 재정 여력 감소를 보완할 수 있는 민간투자사업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며 “단기적으로는 사업집행 점검 등을 통해 SOC 이월액과 불용액을 최소화해야 건설업이 직면한 위기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비 부담으로 공공공사 유찰이 이어지는 가운데 집행 속도만 높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300억 원 이상의 대형 공공공사의 유찰률은 51%로 2020년 상반기(23%)와 비교할 때 2배 이상 늘었다.
대형 국책사업이나 지방자치단체 핵심사업에 주로 활용되는 기술형 입찰에서도 유찰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2년 동안의 기술형 입찰 사업장의 유찰률은 68.8%에 이른다. 사업 구상부터 발주 단계까지의 물가 상승분이 오랜 기간 사업비에 적정하게 반영되지 않은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권주안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문건설공제조합 등 보증기관을 중심으로 한 기존 상품 보완을 강구해야 한다”며 “주택시장 침체는 공공부문 발주 물량이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꾸준한 매출을 보전할 수 있기에 관련 제도 개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