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제정책방향에 ‘기금형 제도 도입 검토’ 등장
국민연금 퇴직연금 시장 진출 가능성에…증권사 ‘난색’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사업자 진출 가능성을 둘러싸고 증권가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해당 논의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멈춘 듯해 안도했으나, 최근 정권과 관계없이 추진될 기미가 보여서다. 증권업계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민간 사업자의 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성과가 가시화되기도 전에 공적 개입을 논의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19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퇴직연금 사업을 영위하는 증권사 14곳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총 103조9257억 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96조5328억 원)보다 7조3929억 원(7.66%) 늘어난 수준이다. 지난해 10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시행되면서 증권사로 자금이 몰렸다. 증권사 퇴직연금 계좌는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다양해 타 금융사보다 운용 전략을 실행하는 데 유리하다.
퇴직연금 실물이전0 제도 수혜를 예상한 증권가는 퇴직연금 사업을 신(新) 먹거리로 인식하고 고객 유치에 나섰다. 퇴직연금 상위 4개 증권사(미래에셋증권·현대차증권·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는 지난해 말 관련 조직을 확대 개편했다. 상장지수펀드(ETF) 적립식 자동매수 시스템이나 퇴직연금 전용 로보어드바이저(RA) 일임 서비스 도입에 적극적인 증권사도 많다. 키움증권은 올해 연금사업팀을 신설하며 퇴직연금 시장 진출에 나섰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앞서 퇴직연금 기금화는 지난해 8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급부상했다. 이 법안은 100인 초과 사업장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기금형 퇴직연금 사업자로 참여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논의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했으나, 2일 정부가 발표한 ‘2025년도 경제정책방향’에 다시 등장하며 불이 붙었다.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종합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공적·민간기관 등이 참여하는 기금형 제도 도입 검토’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증권업계에서는 정부의 공식 문건에 나온 것만으로도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그간은 정부 부처의 태스크포스(TF) 등 비공식적인 움직임에 그쳤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고용노동부 측에 해당 내용을 확인했을 때도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알린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 확장이 한창인 중에 퇴직연금 기금화를 논의하는 건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관계자는 “퇴직연금 민간 사업자가 수익률 제고 등을 고민하며 사활을 걸고 있는 와중에 국민연금이 시장에 진입하면 사실상 민간 사업자의 경쟁력을 공적 개입으로 위축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연금체계는 3층으로 이뤄져 안정적인 것인데, 1층(국민연금)이 2층(퇴직연금)까지 가져가는 건 위험 관리 차원에서도 좋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공적 영역에 해당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중퇴기금)이 있지 않느냐”며 “시장의 부족한 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도 국민연금을 사적 연금인 퇴직연금 시장에 진입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보다 민간사업자의 수익률이 뒤처져 기금화가 필요하단 주장에도 반박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퇴직연금 적립금 중 실적배당형의 평균 수익률은 2023년 기준 13.27%로, 국민연금(13.59%)과 비슷하다. 이에 원리금 보장형에 치중해 낮아진 퇴직연금 총수익률(5.26%)을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보완 등을 통해 높이는 작업이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편 지난해 11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개정법률안 검토보고’에도 기금형 제도 도입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검토 의견 부분에는 “공공기관이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투자 주체(공공기관)와 책임의 귀속주체(근로자)가 상이하고, 기금운용의 손실이 발생한 경우 근로자의 노후소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운영하는 공공기관을 병립할 필요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