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 등 산업계 패키지 대응 필요
“국내 기업들 글로벌 위상 높아져”
첨단분야 소부장 수출로 ‘제조업 허브’ 구축해야
“우리나라 대미 무역 흑자액이 지난해 557억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중국, 유럽연합(EU), 멕시코 등에 이어 우리는 미국에 대해 흑자를 많이 내는 7등 국가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새로 출범한 미국 행정부에 포괄적인 협상 전략을 펼쳐야 합니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처음 집권했을 당시 직전 해인 2016년에는 대미 무역 흑자가 233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두 배 이상 늘어났다”라며 “향후 2~3년 내로 우리나라에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가 공식 출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 취임 첫날부터 전기차(EV) 의무화를 철회하는 등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내린 78개 행정명령을 일괄 폐지하고, 파리기후협약·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등 46개 행정명령에 새로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편관세 공약과 관련해서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조속히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에 관세 등 대외 세금을 총괄하는 ‘대외수입청(ERS)’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마지막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박 원장은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 당시 통상 업무를 총괄하며 미국과 협상해본 경험이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국가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예외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을 할 수가 없다”라면서도 “보편관세 시행은 전문가의 입장에서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운 보편관세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각 나라는 WTO 협상을 통해 관세를 약속하고 있다”라며 “일반적으로 반덤핑으로 인한 무역구제제도 이외에는 관세를 올린다는 건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1997년 WTO에서 주요 국가들이 휴대폰, 반도체, 컴퓨터 등 정보통신(IT)을 전체로 묶어서 무관세로 하자는 정보기술협정(ITA)도 맺었다”라며 “보편관세는 ITA에도 위배되기 때문에 상대 국가들의 보복을 많이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존경한다고 언급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사례도 언급했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은 일본 자동차의 급격한 성장세를 못 이겨 통상 압력을 가했고, 당시 일본 정부는 ‘자발적 수출 제한 제도’를 통해 자동차 수출량을 연 160만대로 제한했다.
박 원장은 “일본이 당시 자동차 수출을 줄인 것은 자율적으로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국 정부의 압박을 받아서 한 것”이라며 “국내 자동차 기업들이 미국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고 판단하면 한미 FTA 개정을 요구하면서 자동차에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결국에 미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원장은 “보편관세를 통해 중국산에는 60%, 멕시코·캐나다 25%를 매기겠다고 했는데, 당장은 관세를 통해 미국 정부의 수익은 높아질 수 있다”라면서도 “결국 인플레이션이 오기 때문에 미국 경제에도 치명타가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칩스법(CHIPS Act)을 통해 혜택을 받는 지역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경우도 많아 완전히 폐지하는 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박 원장은 트럼프가 내세운 모든 정책의 가장 큰 목표는 ‘중국 압박’이라고 봤다. 박 원장은 “트럼프가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할 거라 공언하고 보편관세를 단행하려고 하는 가장 큰 목적은 ‘중국 압박’”이라면서 “이해관계가 있는 주요 국가들과 일일이 협상을 해서 유리한 고지 선점을 위해 사전 위협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트럼프 2기 출범으로 미중관계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그는 “미국도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면 중국도 가만히 있진 않을 것”이라면서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농산물을 많이 사고 있는데 농산물 수입 금지, 핵심 원자재 수출 금지 등 이른바 ‘보복관세’로 일컫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박 원장은 트럼프 2기 출범과 동시에 우리 정부·기업이 함께 나서서 포괄적인 협상 전략을 구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미국 공장을 활용해 현지 생산에 집중하거나, 트럼프 행정부 2기 인사들과 접촉해 사업 재편을 꾀하기 위해 총력을 펴고 있다.
그는 “한국의 현재 정치 상황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나, 확실한 건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위상은 정말 높아졌다는 점”이라며 “우리 정부는 보편 관세 시행이 국제적으로 어긋난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되, 기업들의 투자 계획이나 비즈니스 전략 등을 하나로 모아 패키지로 전달하는 ‘포괄적 협상 전략’을 통해 트럼프 정부하고 협상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경제·안보 분야의 첨단 제품을 생산해 ‘제조업 강국’의 면모를 활용하는 새로운 통상전략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외로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첨단기술 분야의 고부가가치 소재, 부품, 장비를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박 원장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다 보니 중국을 빼고 누가 경제·안보 분야의 민감한 제품을 가장 잘 제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라며 “우리 기업들이 제조업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기업들이 해외로 나가 생산을 하면, 첨단 제품에 들어가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우리 기업들이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해외 투자와 수출과 무역을 유도할 수 있도록 연계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 과정이 선순환된다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첨단 분야 소부장 공급의 허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은 대학, 국책연구원, 정부 등에서 40여 년간 일한 국제통상전문가다. 박 원장은 2011~2013년 이명박 정부 당시 마지막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이행했다. 이어 한중 FTA 협상과 한중일 FTA 및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도 이끌었다. 박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 학사를 거쳐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조지타운대 조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박 원장은 2017년 법무법인 광장이 설립한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에 초대 원장으로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