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창문 깨부수며 "판사 어딨어!"…그들을 누가 움직였나 [이슈크래커]

입력 2025-01-20 17:56 수정 2025-01-2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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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19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유리문을 깨고 있다. (출처=유튜브 채널 '락TV' 라이브 방송 캡처)
▲한 남성이 19일 오전 서울서부지법에서 유리문을 깨고 있다. (출처=유튜브 채널 '락TV' 라이브 방송 캡처)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 또 다른 역사(?)를 썼습니다. 윤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체포된 데 이어 구속됐고, 법원에선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집단 난동이 벌어진 겁니다.

19일 오전 3시께 서울서부지법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지자 법원 정문과 유리창을 깨부수며 법원에 난입해 집기와 시설물을 파손했습니다. 심지어 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실명을 부르며 "나와라", "X여버리겠다" 등 겁박을 서슴지 않았죠.

간혹 판결에 앙심을 품은 사람이 법정에서 난동을 부린 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여러 명의 군중이 법원에 집단 난입해 집기를 부수고 판사실을 뒤져가며 행패를 부려 법원이 '무법지대'가 된 건 유례가 없는 일인데요. 특히 난동의 배경이 정치적 이유라는 점에서 상황은 심각해집니다.

대검찰청도 "서부지법과 인근에서 자행된 불법 폭력 점거시위는 법치주의와 사법 체계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매우 중대한 범죄"라고 못박았습니다. 서부지검에 전담팀을 구성해 엄정 대응할 계획이죠.

이번 난동에 더욱 심상찮은 시선이 쏠리는 건 선전·선동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는 겁니다. 법원 앞에 모여 있던 일부 지지자들의 우발적 폭동이 아니라 일찍이 예고된 폭력이라는 주장인데요. 이들을 움직이게 한 동력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유리창이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 의해 파손돼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유리창이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 의해 파손돼 있다. (뉴시스)

서부지법 '무법의 3시간'…집기 때려 부수고 "판사 어딨냐" 위협

차은경 서부지법 부장판사는 전날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이날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19일 구속영장을 발부했습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47일 만이자 윤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체포된 지 나흘 만입니다.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보고서에 따르면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사실이 언론에 공지된 건 이날 오전 2시 59분께인데요. 이후 각종 매체를 통해 구속영장 발부 소식이 속속 전해지자, 서부지법 인근에 모여 있던 수백 명의 지지자는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극렬 지지자들은 오전 3시 7분께 경찰 저지선을 뚫고 법원 경내에 침입했는데요. 오전 3시 21분께 경찰로부터 빼앗은 기동대 방패 등으로 유리창을 깨며 진입했죠.

법원 내부 집기를 부수고 복도에서 소화기 분말을 뿌리며 행패를 부리는가 하면, 판사실 등이 있는 법원 7층까지 올라가 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이름을 거론하며 사무실을 뒤졌습니다. 기물파손 수준을 넘어 특정 판사를 찾아내 위협하려는 목적이 보이는 대목입니다.

다만 차 부장판사의 사무실은 영장판사와 다른 층에 있어 지지자들이 침입하지는 못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야간 당직 직원들 10여 명은 1층에서 음료수 자판기 등으로 문을 막고 대응했으나 지지자들에 의해 현관이 뚫리자 옥상으로 대피했다고 하는데요. 다친 사람은 없지만, 정신적 트라우마가 큰 상황으로 법원행정처는 파악했습니다.

경찰은 오전 3시 32분께 법원 내부로 진입, 지지자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법원 내부 상황은 오전 5시 15분께 모두 정리된 것으로 파악됐지만 일부 시위대는 오전 7시 28분께까지 계속 청사 외부에서 경찰과 대치한 것으로 전해졌죠.

▲내란 수괴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담장 너머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내란 수괴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담장 너머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경찰 때리고, 법원 부수는 모습 '생중계'…경찰 "채증자료 통해 엄정 수사"

경찰은 서부지법 및 헌법재판소 내외부에서 발생한 집단 불법행위로 90명을 현행범 체포해 수사 중입니다.

서울경찰청은 20일 언론 공지를 통해 이번 난동 사태로 현행범 체포한 90명 중 전날 서부지검에 66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는데요. 이 중 5명은 이날 서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았다고 알렸죠.

구속영장이 신청된 46명은 서부지법 내부에 침입한 혐의, 10명은 공수처 차량을 막으며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를 받습니다. 10명은 서부지법 담을 넘거나 경찰관을 폭행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이 적용됐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현행범으로 체포된 90명 중 20·30대가 51%(46명)에 달했는데요. 특히 서부지법에 침입한 46명 중 유튜버도 3명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죠.

이날 서부지검에서 벌어진 난동은 일부 유튜버들에 의해 그대로 생중계되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 유튜버의 영상에선 "밀어! 밀어!", "들어가!" "이건 민주화운동"이라고 외치면서 법원 습격을 사실상 독려(?)하는 음성이 포착됐습니다. 경찰이 현행범으로 체포한다고 고지하자 욕설을 하는 모습도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공개됐죠.

지지대나 돌을 이용해 서부지법 유리문과 유리창을 깨고, 외벽과 내부 기자재를 마구잡이로 부수는가 하면, 소화기 분말을 뿌리며 영장 발부 판사를 찾는 모습도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법원 1층에서 경찰과 맞닥뜨린 유튜버가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모습도 포착됐는데요. 이 유튜버는 "제가 뭐 폭력을 쓴 것도 아니고 기물을 파손한 것도 아니다"라며 "밀려들어 갔다. 밀려서, 뒤에서 밀어서"라고 자신이 체포되는 장면까지 실시간 중계했죠. 그런가 하면 경찰버스 안에서도 라이브를 켜고 오히려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는 모습도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채증자료를 통해 현장에서 체포되지 않은 유튜버들의 위법 행위에 대해서도 엄정 수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이후 유튜버들은 현장 영상을 삭제하며 증거 인멸에 나섰는데요. 경찰은 채증영상과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토대로 가담자 전원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미 온라인상에 '박제'된 영상 자료가 많기도 하죠. 취재진을 밀쳐 넘어뜨리고 욕설하며 집단 구타하는 모습도 온라인을 통해 공개돼 경악을 자아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전 서부지법 외벽과 창문 등 시설물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되자 일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내부로 난입해 불법폭력사태를 일으킨 19일 오전 서부지법 외벽과 창문 등 시설물이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자극적 언행→가짜뉴스 유포도…'돈방석' 앉은 유튜버들

이번 법원 난동 사태에는 극단적인 정치 성향의 유튜버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다수의 극우 유튜버들은 12·3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 국면, 또 이번 서부지법 난동까지 관련 영상을 제작, 공개해왔습니다. '선거 조작'과 공수처의 '불법 수사', 서부지법의 '불법 영장' 등 레퍼토리는 비슷했죠.

가짜뉴스 전파에 적극적이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한 주간지는 "12·3 비상계엄 선포 당일 수원 선거연수원에 선관위 공무원 등 민간인 90여 명이 머물렀다"며 "이들이 머무르던 숙소 각 층에 사복 차림의 남성들이 배치됐고, 민간인들이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통제했다"고 계엄 사태를 비판하는 취지의 기사를 보도했는데요. 이튿날 구독자 147만 명을 보유한 한 유튜버의 영상을 통해 해당 기사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탈바꿈됐습니다.

이 유튜버는 "연수원에 감금됐던 인물들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한국인이 아니거나 어딘가로 연행됐기 때문"이라며 '중국인'을 언급했는데요. 더불어민주당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주류 언론이 감추려던 사실이 폭로됐다고 주장한 겁니다. 근거로는 '선거 조작을 위해 들인 중국인 해커 아니냐' 등 해당 기사 아래 달린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댓글을 거론했습니다.

'중국인' 의혹은 극우 성향 인터넷 매체, 극우 유튜버 등을 통해 '중국 전산 조작원 90명이 현행범 체포됐다', '중국 전산 조작원들이 체포돼 미국 정보당국에 이송됐다' 등 내용으로 살이 붙어 급속도로 확산했습니다. 이어 이 주장은 '계엄이 정당했다'는 논리로 윤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 힘을 얻었죠.

선관위도 이 같은 가짜뉴스 확산을 심각하게 보고 공식 입장문을 냈습니다. 지난달 17일 입장문에서 선관위는 "비상계엄 당시 선거연수원에서 숙박 중인 중국인 해커 90여 명이 계엄군에 의해 체포됐다는 일부 언론보도가 있으나,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는데요. 이어 "계엄 당시 선거연수원에선 선관위 공무원 총 119명을 대상으로 5급 승진자 과정과 6급 보직자 과정 등 2개의 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었다"며 "계엄군은 선거연수원 청사 내로 진입하지도 않았다"고 선을 그었죠.

20일엔 서부지법 난동을 주도한 이가 다름 아닌 기자라는 이야기가 나돌았습니다. 이날 유튜브 등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엔 서부지법 유리문을 소화기로 부수려는 남성 등이 JTBC 소속 특정 기자라는 소문이 확산했는데요. 이름이 거론된 기자의 기사 댓글 페이지에도 악성 댓글 수백 개가 달렸습니다.

JTBC는 이날 '서부지법 폭동 취재 허위정보 관련 입장'을 내고 "소화기를 들고 유리문을 부수려 하는 마스크 쓴 인물이나 판사 집무실 난입한 사람이 JTBC 기자라는 소문은 악의적으로 만들어낸 거짓"이라며 "언급되고 있는 기자들은 해당일 해당 시간 서부지법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었던 것이 명확히 확인됐다. 법원 내 판사실 등에서 벌어진 폭동 상황을 영상 취재한 건 현재 허위 정보에서 언급되는 기자들이 아닌 JTBC 뉴스룸 내 다른 팀원"이라고 강조했는데요. 이날 촬영한 화면 원본을 법원에 제출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어 "현재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포하는 행위는 기자 개인 및 JTBC에 대한 허위 사실 적시 명예훼손, 또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업무방해 등에 해당한다"며 "개인과 단체를 불문하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작성, 유포하는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강력한 민형사상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자극적이거나, 진위가 확실치 않은 주장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더 많은 후원을 유도하기 위해서죠.

20일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튜브 채널 순위집계 플랫폼 '플레이보드'를 분석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극우·보수 성향 유튜버 슈퍼챗 수입 순위 상위 7개 채널 중 6개의 지난달 수익은 전월 대비 평균 2.1배 증가했습니다. 슈퍼챗은 유튜브 채널 생방송 중 시청자가 회당 최대 50만 원까지 후원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이 중 162만여 명의 최다 구독자를 보유한 채널의 경우 지난달 슈퍼챗 수입이 1억2500여만 원으로 전월(5908만 원)보다 2.1배나 껑충 뛰었는데요. 구독자 34만여 명을 보유한 다른 채널은 같은 기간 868만 원에서 2187만 원으로 2.5배 증가했죠.

특히 이들 7개 채널 모두 슈퍼챗 수입과 함께 별도 계좌를 통해서도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어 실제 수익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이 가운데 5개 채널은 개인 명의 계좌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일부 유튜버들에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극우 유튜버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과 여당도 사실상 '선동' 행위를 하거나 이를 도왔다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죠.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사회 갈등이 봉합돼야 하는데 점점 진영 대립이 심각해지고 폭력·배타적 성향을 띠면서 격화하고 있다"며 "책임 있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동도 이유가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공수처 수사나 서부지법의 영장 청구 및 발부 등을 불법으로 규정했던 윤 대통령 측의 주장에 대해 "선전, 선동"이라며 "그것(수사 절차)조차 피하면서 계속해서 국민에 대한 선동을 해오셨다. '나를 지켜라. 극우여, 봉기해서 나를 지켜라' 등 선동과 그런 선동들을 이용하려는 정치 집단들, 이런 것들이 겹치면서 사회 갈등이 올라와 버렸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책임 있는 자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처사였고 대한민국에 큰 상처"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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