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강화·사법 신뢰회복’이 급선무
여야 꼼수에 철퇴…판관 준엄함 보길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로 전락한 것이다. 최초란 말 붙이기조차 참담하고 불쾌하다. 종북좌파 반국가세력이 우글거리는데 2년 반 더 해서 뭐 하냐고 말했다지만 그렇게 될 줄 몰랐다면 그 정도 인물에게 나라 운명을 맡겼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대통령 탄핵이나 처벌은 처음이 아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단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형사처벌이 있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난 뒤에는 늘 사면이 됐다. 윤 대통령 역시 결국 사면받겠지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람을 갈아치워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 걸 보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이다.
사람을 갈아치워도, 제도를 뜯어고쳐도 잘 안 되는 일이 있다. 사람을 갈아치우는 데 힘을 쏟다 보니 더 나쁜 후임자가 들어서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사람들은 안다. 촛불시위 어부지리를 누리고 훗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게 될 인물을 스스로 자랑스레 등용하고 뒤통수를 맞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후회는 했을지언정 반성하지 않는 그들이 갈아치운 사람보다 낫다 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을 갈아치워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더 나쁜 후임자가 나온다면? 낭패다.
제도를 아무리 잘 뜯어고쳐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던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이 처음이자 끝이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지혜가 생길 법도 한데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실수를 반복한다. 곰곰 생각해보면 제도도 제대로 뜯어고치지 못했고 사람도 제대로 갈아치우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아니 사람을 갈아치우고 제도를 뜯어고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불편한 진실이 뇌리를 가른다. 우리는 무슨 생각으로 살고 무엇을 했던 것일까.
하루하루 우울한 나날이 페이지를 넘긴다.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어 구치소에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암담한 계절이 하루이틀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누구나 다 안다.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언제나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도 이처럼 허황된 선택을 가능케 한 제도의 맹점들이 드러났는데도 사람이 문제라며 비켜갈 수 있을까.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이 참혹한 변란을 거듭 겪고서도 나라의 틀, 외양간을 고치지 못한다? 그건 아니다. 이번에 드러난 헌법의 공백, 허점들은 이미 알려진 것들이다. 그런데 알면서도 제도를 제때 개선하지 못했다. 그런 문제 하나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데 또 다른 십 년이 필요할까?
대통령 권력과 의회 권력의 극한대결에 따른 막다른 길목을 타개할 수 있는 제도적 메커니즘을 갖춘 정부형태 시즌 2가 필요하지만 문제가 간단치 않고 더욱이 최우선 순위도 아니다. 가장 긴급한 과제는 극한대결의 국정위기를 헤쳐나갈 공정하고 효과적인 심판 기능을 재확립하는 것이다. 사법시스템의 신뢰 회복, 헌법재판소의 강화가 급선무로 떠올랐다.
‘K-사법’으로 기대를 모았던 법원들이 편파성 시비에 시달리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도 대부분 사법의 본체는 멀쩡하다’며 넘길 일이 아니다. 헌법재판관의 임기 만료 등으로 정족수 논란을 낳고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옥신각신하며 헌법재판제도 자체의 신망을 떨어뜨리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난리를 겪고도 여야 간 합의가 어려우니 그대로 간다? 이건 아니다. 이제 초당파, 비당파, 헌정의 지속가능성 이 모든 당위를 총동원해서라도 이미 알려졌고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헌정시스템은 이런 유의 스트레스를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다. 개헌이든 입법이든 ‘무어라도 해야 한다’(do something).
대통령의 비상계엄 도박 후 시간끌기와 조기대선 목적 시간단축으로 여야 간 치열한 ‘시간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숨과 우울의 끝판왕이다. 이런 ‘꼬라지’를 보며 2025년 을사년을 시작해야 한다니, 동시대인의 비애다. 불확실성을 싫어하는 것은 경제만이 아니다. 민주주의도 그렇다. 사법이 불확실성을 키워서는 안 된다. 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모두 누가 뭐래도 시비를 걸 수 없는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분발해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용렬과 야비의 시간전쟁 꼼수에 철퇴를 내리는 판관의 준엄함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