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트로트 인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장 21일 방송된 MBN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현역가왕2'만 해도 전국 시청률 11%(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 순간 최고 11.7%를 기록하면서 화요일 밤 시청률 1위를 차지했는데요.
새 프로그램들도 베일을 벗습니다. 민족 대명절 설을 맞아 KBS는 K-트로트의 현재와 미래를 증명하는 화려한 축제 '트롯대잔치'를 방송하고요. 다음 달엔 대한민국 대표 트로트 가수 장민호·이찬원의 트로트듀싱, 연예계 스타 12인의 트롯 가수 도전기 tvN STORY '잘생긴 트롯'이 첫 방송됩니다.
그런데 새 프로그램들엔 반갑지 않을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트로트 열풍이 식었다'는 건데요. 매년 꾸준히 불거진 '트로트 위기설'이라기엔 하락세를 이어가는 시청률, 화제성, 공연 예매율 등이 거론돼 간과할 수 없을 듯합니다.
특히 최근 화제를 빚은 가수를 향해선 "트로트 하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까지 나온 실정입니다. 각종 트로트 예능으로 계속될 것만 같았던 트로트 열풍, 그 이면을 살펴봤습니다.
트로트 열풍을 몰고 온 주역은 TV조선입니다. 2019년 TV조선은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을 선보였는데요. 첫 회 5.9%의 시청률로 시작한 방송은 최종회 18.1%로 끝을 맺었습니다. '트로트 여신' 송가인이라는 걸출한 스타까지 배출했죠.
TV조선은 기세를 몰아 남자판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이듬해인 2020년 방송된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을 통해서였는데요. 통상 오디션 프로그램은 두 번째 시즌이 이른바 '대박'을 치곤 합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Mnet '슈퍼스타K 시즌2' 결승전에선 허각과 존박의 대결이 뜨거운 화제를 빚었고요. SBS 'K팝스타'에선 악동뮤지션(현 악뮤)이 탄생했죠. Mnet '프로듀스 101' 두 번째 시즌이 방송된 2017년 가요계는 보이그룹 워너원이 평정했는데요. 데뷔곡인 '에너제틱(Energetic)'은 발매와 동시에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 멜론에서 톱100 차트에 1위로 진입했죠. 이용자 수 9만9000명가량으로 당시 역대 최대 기록을 썼습니다. K팝 팬들 사이 "저 때 우린 미쳤었다(?)", "덕질로 후회 없이 불태웠던 시절", "워너원도 바빴겠지만 나도 덕질하느라 너무 바빴다" 등 아련한 회상이 이어집니다.
특히 TV조선의 두 번째 트로트 오디션 시리즈 '미스터트롯'으로는 한국이 들썩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첫 회부터 12.5%로 시작한 시청률은 불과 5회 만에 25%대를 돌파했고, 8회에는 30%대를 넘더니 최종회에서는 35.7%를 찍으면서 대한민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새로운 역사를 썼죠. 아니, 예능 전체로 범위를 확대해도 되는데요. 1995년 케이블TV 시청률 집계가 시작된 이래 비(非)지상파 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이자, 지상파와 비(非)지상파 통틀어서도 KBS 2TV '1박 2일'의 39.3%를 이은 두 번째 기록으로 남은 겁니다. 국민 예능 '무한도전', 한때 일요일 밤을 책임졌던 '개그콘서트'의 최고 시청률도 뛰어넘은 수치죠.
'미스터트롯1'을 통해 무명 가수였던 임영웅은 국민 스타로 떠올랐고요. 영탁, 이찬원 등 '톱7'에 오른 출연자들도 저마다 탄탄한 팬덤을 형성했습니다.
출연자들은 TV조선의 스핀오프 예능에서 활약하다가 전속계약이 종료된 후 타 방송사들로도 활동 범위를 넓혀 맹활약했는데요. 이들이 떴다 하면 시청률도 수직 상승하는 효과도 나타났습니다.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방송 관계자들 사이 '1순위 섭외자'로 통할 정도였죠.
TV조선은 '미스트롯2'까지 선보이면서 3연속 트로트 예능 흥행사를 썼는데요. 타 종합편성채널(종편)을 포함해 케이블, 지상파 채널까지 트로트 열풍에 탑승했습니다. 'TV만 틀면 트로트가 나온다'는 말도 괜한 반응이 아니었죠. 트로트 인기가 치솟다 보니 발라드, 알앤비(R&B) 등 타 장르에서 이름을 알린 가수들도 트로트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스터트롯'도 시즌2로 출격했습니다. 또 다른 임영웅, 영탁, 이찬원을 배출하겠다는 각오였는데요. 시즌2의 트로피는 시즌1 본선 3차전에서 탈락해 재도전한 안성훈이 거머쥐었습니다. 선(善)과 미(美)는 각각 박지현과 진해성이 차지하면서 박수를 받았죠.
그런데 '미스터트롯2'은 방영 당시부터 심상찮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시청률뿐만 아니라 측정할 수 있는 모든 인기 지표에서 시즌1에 비해 성적이 크게 떨어진 건데요. '미스터트롯2'는 첫 회 20.2%로 시작해 최종회 24.0%로 종영했습니다. 자체 최고 시청률부터 시즌1과 10%p(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고요. 28.6%로 시작해 32.9%로 종영한 '미스트롯2'와 비교하더라도 다소 아쉬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오디션 예능의 묘미, 생방송 문자 투표수도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시즌1에서는 773만여 건의 문자가 한꺼번에 몰린 바 있습니다. 결승 진출자 7명의 득표수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서버 오류가 발생하면서 최종 우승자 발표가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죠. 반면 시즌2 문자 투표수는 252만여 표로, 시즌1보다 520만여 표가 줄어들며 3분의 1가량으로 토막 났습니다.
이 밖에도 각종 화제성 조사에서 시즌1에 못 미치는 순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단체 콘서트 티켓 매진도 불발되면서 아쉬움을 남겼죠. 무엇보다 송가인, 임영웅에 견줄 수 있는 화제성을 지닌 출연자가 전무했다는 점이 뼈아팠습니다.
이후 '미스터트롯3'가 지난달 첫 방송 됐는데요. 상황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첫 방송 시청률이 12.9%로 시즌2 대비 뚝 떨어진 겁니다.
시청률은 하락세에 접어들기까지 했습니다. 2회 15.1%로 오르며 순항하나 싶더니 3회엔 13.6%로, 16일 방송된 4회엔 11.9%로 떨어지면서 자체 최저 시청률을 경신했죠.
이번 시즌 성적이 부진한 이유로는 우선 마스터 군단의 변화가 꼽힙니다. 예심 오디션에 참여했던 10인의 선배 마스터 가운데 8명이 빠졌는데요. 탄탄한 팬덤을 거느린 이찬원, 정동원, 김희재 등이 포함된 만큼 이들의 팬층도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이들의 빈자리는 가수 이미주와 한승연, 현영이 채웠는데요. 심사위원의 전문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죠. 이외에도 산만한 분위기와 진지하지 않은 평가, 대중 의견과 상반되는 투표 결과, 희미해진 정체성, 형평성 논란들이 시청자들의 흥미를 떨어뜨린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주된 이유는 '예전 같지 않은 트로트 열풍'이라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장르의 인기를 이어갈 새로운 스타가 발굴되지 않으면서, 더욱 빠르게 식어가는 트로트의 인기를 방증한 셈이라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트로트에 인재를 뺏기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최근 나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22일 유튜브 인기 급상승 음악 2위에는 한 가수의 미발매 자작곡, '낫 어 드림(Not a Dream)' 라이브 클립이 올랐는데요.
몽환적인 파란색 아이섀도, 시크한 헤어스타일, 뭉개는 듯한 발음과 자연스러운 리듬감으로 새로운 인디 가수의 등장이라고 생각할 법했죠. 이 가수는 대중에게 '국악 소녀', '국악 신동'으로 잘 알려진 송소희였습니다.
7살부터 '국악 신동'으로 불린 송소희는 2008년 KBS 1TV 음악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연말 결선에서 당당하게 대상을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2014년에는 '송소희 밴드'를 결성해 크로스오버 음반을 선보였고, 2015년 첫 정규 음반도 발매했죠.
경기민요 소리꾼으로 활동하던 그는 2022년 첫 자작곡 '구름곶 여행'이 담긴 싱글 앨범 '구름곶 여행: 저니 투 유토피아(구름곶 여행 : Journey to Utopia)'를 발매하면서 음악 세계를 확장해나갔는데요. 국악인으로 쌓아온 내공을 자신이 만든 음악에 자유롭게 적용하면서 재미를 느꼈다고 합니다. 지난해 4월 미니음반 '공중무용' 청음회에서 그는 "꾀꼬리처럼 맑고 청아한 음색을 내는 목 기술을 적재적소에 집어넣어 보면서 경기소리를 했던 (경험의) 장점들이 느껴졌다"며 "선택지가 많아 레고를 하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고 설명했죠.
이 노력이 '낫 어 드림'을 통해 대중에 닿았습니다. 본인의 국악 스타일 보컬을 아일랜드풍 음악에 완벽히 녹여냈다는 극찬이 이어졌는데요. 9일 공개된 '낫 어 드림'의 라이브 클립 영상은 10일 만에 100만 뷰를 훌쩍 넘겼고요. 22일 기준 167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기 급상승 음악 2위에 오르면서 세계적인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아이돌 그룹 아이브, 라이즈, 보이넥스트도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죠.
인기에 힘입어 소속사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는 14일 "현재 송소희가 '낫 어 드림' 녹음을 준비하고 있으며 상반기 내 발매를 목표로 작업 중"이라고 전해 음악 팬들의 기대를 드높였습니다.
네티즌들의 반응도 폭발적입니다. 한 네티즌은 댓글로 "국악은 대부분 트로트로 빠지는 게 너무 아쉬웠는데, 이렇게 독창적인 장르를 구축해가는 게 대단하고 존경스럽고 고맙다"고 적었는데요. 이 댓글은 5000개에 달하는 '좋아요'를 받았죠. 또 다른 네티즌도 "새로운 장르의 시작을 본 것 같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그림이 잘 그려지는 노래라니"라며 "트로트 말고 이렇게 새 장르를 개척해줘서 너무 좋다"고 전했습니다.
자신만의 장르 구축에 힘쓴 가수에게 신선한 도파민을 느낀 대중이 적지 않아 보이는데요. '트로트 인기의 거품(?)이 빠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이라 그를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더욱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