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자본소득에 대한 정부의 진정성

입력 2025-01-2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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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물가는 상승하는데 경기는 침체하는 ‘이중고’를 경계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모색한 돌파구 중 하나는 주식시장 부양이다.

증시 전반의 가치를 끌어올려 수익성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 증시 활성화 시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런 정부의 행보는 근로소득만으로 의식주를 온전히 해결하기 어려워진 국면에서 자본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발상을 배경으로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증시 활성화를 둘러싸고 국가기관들은 엇박자를 내는 모양새다. 정부는 해외주식이나 지수를 추종하는 토털리턴(TR)형 상장지수펀드(ETF)를 사실상 금지하는 세법 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TR형 ETF는 펀드에서 나오는 이자나 배당 수익을 투자자에게 나누지 않고 모두 재투자하며, 세금은 투자 후 환매·양도할 때 내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실시되면 해외 TR형 ETF는 매년 한 번 이상 결산·분배를 해야 한다. 매년 수익에서 소득세를 뗀 나머지 금액만 재투자하는 기존 분배형(PR·price return) 상품과 대동소이해지는 셈이다.

정부는 입법예고 핵심 이유로 조세 형평성을 들었다. 누군가는 배당소득세를 내는데 다른 누군가는 이를 내지 않고 복리 효과를 누린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취지다. 이는 조세 평등주의 준수 측면에서 일리 있는 설명이다. 자산운용업계에서도 이 지점은 해묵은 논쟁이었다.

해외상품 투자자로서는 이번 정부 조치에 대해 역차별을 주장할 만한 대목이 존재한다. 국내에서 해외 지수나 주식에 투자하는 간접투자 상품에는 ‘보유기간세’가 매겨진다. 보유기간세는 해외 투자상품을 갖고 있던 기간을 합산해 부과하는 세금으로, 해외 TR형 ETF에도 적용된다.

보유기간세는 국내 투자상품에 대해서는 면제된다. 국내 투자상품과 달리 해외 투자상품에는 또 다른 세목이 추가된 상황에서 정부는 국내 TR형 ETF은 허용하고, 해외 TR형 ETF는 허용할 수 없다고 했다. 국내 증시 활성화를 위해 국내 TR형 ETF에만 예외를 뒀다는 의미다.

투자자 불만은 치솟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 ETF는 높은 수익률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에 국내 ETF에는 없는 세금이 해외 ETF에 매겨져도 이를 감수하며 투자를 이어갔다. 시민들의 또 다른 소득 창출 원천을 찾던 정부 정책에 진정성이 있는지 투자자들은 의심한다. “정부는 국민이 돈 버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굳이 증명하려 하는가.” 한 투자자가 해외 지수에 투자하는 TR형 상품의 포털 사이트 종목토론실에 남긴 한탄이다.

시장은 불확실성만큼이나 참견을 싫어한다. 그러나 밸류업 프로그램은 반겼다. 국가와 시장, 투자자가 모두 부유해질 수 있는 개입은 마냥 거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산운용업계는 TR형 ETF에 대한 정부 입장이 공식적으로 정리된 것을 반기고 있다. 동시에 향후 시장과 투자자 이익을 해칠 규제가 늘어나는 것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ETF 시장이 급격히 덩치를 불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규제와 함께 대의를 위한 특혜를 선별적으로 단행할 수 있다면, 그 방향이 어디로 향해야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은 더 필요해 보인다.

윤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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