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마지막 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비명(비이재명)계가 결집을 시작하고 이 대표에 지속적으로 견제구를 던지는 상황에 문 전 대통령은 ‘통합 행보’를 주문했다.
이 대표는 30일 오후 2시 당 지도부와 함께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을 방문했다.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 사저를 찾은 건 지난해 9월 당 대표 연임 인사차 들린 뒤 4개월 만이다.
이 대표를 태운 차량은 오후 1시 56분쯤 마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민족 대명절 설날이었음에도 문 전 대통령 사저 근처엔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 지지자로 보이는 30~40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 대표가 차량의 창문을 잠시 내리자 지지자들은 “환영합니다”, “화이팅”이라고 환호했다.
약 1분 뒤 차량은 사저 안으로 진입했다. 앞마당에서 간단히 인사를 나눈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지자들과 인사하기 위해 입구 계단을 절반 정도 내려왔다.
두 사람은 계단 펜스 앞에 나란히 서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는 서로를 마주보고 약 10초가량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의 손을 잡고 머리 위로 들어올려보이자 지지자들은 환호하며 “이재명 화이팅”, “문재인 화이팅”을 외쳤다. 두 사람의 이 같은 유화적 제스처는 약 1분간 이어졌다.
이날 평화로운 예방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최근 친문·친노(친노무현)계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이 대표를 향해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이를 의식하기라도 한 듯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을 향해 “‘통합 행보’가 중요하단 점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당초 40분 정도로 예정됐던 예방은 시간이 길어져 약 1시간 50분 동안 진행됐다. 조 수석대변인은 예방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문 전 대통령이 “극단적 정치 환경에선 통합과 포용의 행보가 민주당의 앞길을 열어가는 데 매우 중요하다”며 “당면한 문제 해결뿐 아니라 추후 큰 정치적 변화가 생겼을 때 통합 행보가 갈등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이에 이 대표도 “크게 공감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런(포용) 행보를 계속 해나가겠다”고 화답했다.
최근 비명계를 중심으로 이 대표에 쓴소리를 내는 인사가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 나온 통합 메시지인 만큼 정치권의 이목이 쏠린다.
앞서 전날(29일) 야권 내 대권 잠룡이자 친문·친노 적자로 평가받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자신의 SNS에 글을 올리고 “일극체제, 정당 사유화라는 아픈 이름을 버릴 수 있도록 당내 정치문화를 지금부터라도 바꿔나가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이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한 바 있다.
김 전 지사는 “2022년 대선 이후 치 러진 지방선거와 총선 과정에서 치욕스러워하며 당에서 멀어지거나 떠나신 분들이 많다”며 “(이 대표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기꺼이 돌아오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지난 총선 당시 행해진 이 대표의 이른바 ‘비명횡사 공천’(비이재명계 대거 공천 탈락)을 사과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이철희 전 민주당 의원도 23일 “실용이 잘못 해석되면 ‘저 당이 만들어내는 대통령은 자기들이 필요하면 뭐든지 하겠네’라는 인식이 될 수 있다”며 같은 날 이 대표가 기자회견까지 열며 강조한 ‘실용주의’ 노선을 비판했다. 이 전 수석은 최근 비명계 모임 ‘초일회’에 속한 박광온 전 의원 등과 함께 정책연구소 ‘일곱번째나라LAB’을 열어 비명계 결집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단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김 전 지사 등 비명계의 공개 비판과 관련해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이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조 수석대변인은 설명했다.
이외에도 이날 두 사람은 추경 편성 필요성, 장기적 관점에서의 개헌 논의, 부울경 지역 발전을 위한 당 차원의 비전 제시 등에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