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가 빚은 사랑의 파국을 그린 영화로 ‘어톤먼트’(조 라이트 감독, 2008)가 떠오른다. 이안 매큐언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국의 시골 저택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세실리아는 집사의 아들이자 의사를 꿈꾸는 청년 로비와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여동생의 오해에서 비롯된 거짓말로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은 파국을 맞는다. 두 연인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지만 그들의 사랑은 끝내 비극으로 끝난다. 훗날 소설가로 성장한 세실리아의 여동생은 잘못을 뉘우치며 사태를 수습하려 하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오해로 생긴 비극의 압권은 서정주 시집 ‘질마재 신화’(1975)에 실린 ‘신부(新婦)’라는 시를 꼽을 만하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신랑의 성급한 오해는 어떤 비극을 낳았을까? 이 설화의 후일담은 놀랄 만하다. 신혼 첫날밤에 파탄 나버린 결혼. 50년쯤 지나 신랑이 신방을 꾸렸던 마을을 지나간다. 신랑이 궁금해서 신방 문을 열었더니 신부는 첫날밤 모양 그대도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앉아 있었다. 신랑이 신부의 어깨에 손을 얹으니 그때서야 신부는 초록과 다홍의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았다. 신부의 한과 슬픔이 얼마나 깊었던가를 단박에 보여주는 결말이다.
오해가 일으키는 파괴력은 생각보다 크다. 전쟁에서 부상을 안고 돌아온 젊은 병사가 제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다. 병사는 반갑게 제 어머니와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제 곁에 전쟁 중 부상으로 다리와 눈을 잃은 가엾은 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그 친구를 집에 데려가고 싶다는 아들의 제안에 어머니는 혼자만 오는 게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기쁨에 들떠 아들 맞을 채비를 하지만 곧 오리라던 아들은 오지 않았다. 아들의 행방은 묘연했고, 오랫동안 소식조차 끊겼다.
아들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조차 모른 채 세월만 흘려보낸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 죽는다. 그 어머니는 아들이 말한 친구가 바로 제 자식인 걸 눈치 채지 못했다. 그 아들도 낙담해 타지를 떠돌다가 죽었다. 이게 실화인지 혹은 소설에서 읽은 것인지 기억이 모호하다. 전쟁에서 불구로 돌아온 병사는 왜 타지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을까?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은 바로 오해였다. 모자지간인 두 사람은 오해로 인해 서로를 만나지 못한 채 죽었다. 두 사람 중 누가 더 잘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