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하이닉스 성장 이끈 SK 기업문화

입력 2025-01-30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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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매각 아픔 딛고 최고실적 우뚝
현대 저돌성에 LG의 인화 융합해
‘초일류 추구’ 기업문화가치 일깨워

당대의 거물 정주영 현대 회장이 전자산업에 진출한다고 하자 당시 전자업계 1위 럭키금성(현 LG)의 구자경 회장은 심기가 불편했다. 직설적이었던 두 사람이 독설을 주고받은 곳은 1982년 전경련(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단의 신년 기자회견. 그때만 해도 전경련 회장단은 시무식을 마치고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관례가 있었다. 언론사 편집국장은 이날만큼은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1면 톱기사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언론을 좀체 만나지 않는 대기업 회장들이 단체로 기자들 앞에 서는 자리라 의미가 자못 컸다.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자들이 군불을 먼저 땠다. “현대가 전자공업을 한다는데 혹 겁이 나지는 않습니까?” 구자경 회장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겁은 누가 내요, 전자공업은 아무나 합니까? 괜히 건설에서 번 것 다 까먹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자 정주영 회장이 나섰다. “나는 해외시장이 목표요. 우리는 벌써 IBM하고 얘기가 돼서 전자부품을 전량 납품하기로 했어요. 구 회장한테는 아무런 피해가 없으니 염려 말아요.” 금방이라도 육박전이 벌어질 기세였지만 여기서 끝났다. 그후 현대전자는 컴퓨터, 통신기기, 반도체 등을 아우르며 성장했고 LG도 현대에 개의치 않고 가전, 반도체 등을 통해 세계적 전자업체로서 입지를 다져갔다.

그러나 출범 때 오너들의 입씨름까지 불렀던 양사의 앙금은 이른바 빅딜(1998년)을 겪으면서 대충돌을 빚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추진되던 반도체 통합 법인의 주체를 두고 양사는 그룹 운명을 건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전을 펼쳤다. 결과는 현대의 승리. LG는 2조5000억에 반도체를 던지고 LCD(액정표시장치)와 데이콤 등 반도체와는 무관한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됐다.

빅딜이 한창일 때 전경련에 있던 필자는 막바지에 참여해 언론소통과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했다. LG와 현대의 다툼은 치열했다. 빅딜의 성사를 좌우할 빅카드였기 때문에 정부는 양사에 입단속을 엄중하게 주문했다. 그러나 언론의 취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막후에서 벌어지는 일거수일투족에 언론은 극도로 예민해하며 취재를 했다. 내가 특종을 하는 것보다 타사에 특종을 뺏기는 것이 더 가슴 아픈지라 중간에서 모든 기사에 확인을 해줘야 하는 내 위치가 정말 바쁘고 중요했다. 그래도 작업반에 들어가 있기에 진척 상황을 꿰뚫고 있어 대부분의 기사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해 줄 수 있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니 필자의 발표에 대해서는 기자단의 신뢰가 쌓였다. 공식 발표만을 싣자는 묵시적 합의가 조성됐다. 필자도 극도로 조심했다. 무엇보다 빅딜의 과정에 내가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됐다. 그래서 낮에는 여의도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시내 롯데호텔의 작업반으로 달려가곤 했다. 거기서 밤샘 작업을 하기에 내의, 양말 등을 집에서 챙겨왔다. 퇴근 때 주머니에는 당구공이 들어 있었다. 좀 예민한 취재가 되면 당구공을 딱딱 부딪치며 소리를 냈다. 내가 놀고 있으니 취재기자는 아무 일도 없구나 하고 안심하는 듯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전경련 회관 식당에서 소주를 두어 잔 마시고 기자실에 나가기도 했다. 입에서 술 냄새가 나면 밤새 아무 일도 않고 술만 마셨구나 하며 안도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막바지 열흘 정도를 버티니 누구도 오보를 내지 않고 발표날 모두가 정확한 기사를 쓸 수 있었다. 덕분에 빅딜은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방향을 잡아 진행될 수 있었다. 반도체 통합 법인 하이닉스는 이렇게 출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이어진 반도체 불황에 하이닉스는 10조 원의 부채를 지고 침몰했다. 자산매각, 외자유치 등 백약을 동원했지만 무효였다. 마침내 경영주체가 바뀌었다. 2011년 SK그룹의 일원으로 새 출발을 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23조4673억원, 삼성전자(15조 원·DS부문 추정치)를 훌쩍 넘겼다. 초격차였던 삼성전자를 초격차로 따돌렸다.

이런 성과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총수들 사이에 갈등을 빚었던 저돌적 현대 문화와 인화의 LG 문화가 SK에 와서 ‘수펙스(Super Excellence) 추구’의 SK 기업문화로 통합되면서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SK하이닉스의 변신을 보면서 새삼 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기업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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