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무영등(無影燈)

입력 2025-02-04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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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석 신제일병원장

새빨간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시야가 가려지자, 당황한 의료진의 손과 눈은 분주해졌다.

“상처 부위를 벌리고, 조명을 좀 더 가까이. 자, 빨리빨리 서두릅시다.”

다행히 손상된 혈관이 눈앞에 드러났고, 숙달된 집도의의 손놀림으로 찢어진 혈관은 봉합되었다. 혈압이 오르고 활력징후(vital sign)가 안정되자 한숨을 돌리는 의료진,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무영등 불빛에 반사되어 마치 영롱한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의학 드라마를 볼 때 수술실을 밝히며 등장하는 게 있다. 바로 무영등(無影燈)이다. 눈부실 정도로 밝은 이 조명은 말 그대로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등이다. 불빛 앞에 놓인 사물은 투명한 것을 제외하곤 반드시 그림자가 생기게 마련인데, 수술할 때 의료진의 손이나 기구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는 환부를 가려 불필요한 방해물이 된다. 따라서 이런 그림자가 생기지 않게 고안된 것이 무영등이다.

마술도 아닌데 어떻게 사물의 그림자가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여러 개의 밝은 광원의 빛을 집적하여, 한 지점에 모으되 각자 조금씩 비추는 각도를 달리하여 그림자를 빛으로 덮게 만들기 때문이다.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하며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되 목표를 향해 모인 빛들이 만들어 낸 하나의 마법이다.

새해가 밝았다. 직장마다 새내기들이 많아지는 때, 아직은 낯설고 서툰 그들이기에 실수도 잦고,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강력한 빛을 발하는 선배들이 많을수록 대형 사업일수록, 신입사원들로 인한 그림자가 도드라지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팀에겐 방해가 된다. 하지만 그림자를 더 진하게, 도드라지게 만든다면 팀워크도 깨지고 결승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더딜 뿐이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다양한 빛들은 그림자를 커버해 훌륭한 성과물을 내게도, 또 새내기들에겐 자신의 빛을 발할 기회를 줄 수 있게도 된다.

급변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세상은 점점 성과주의와 경쟁이 팽배해졌다. 누군가의 그림자를 찾아내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야만 하는 냉정해진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림자조차 감싸 안는 무영등 하나쯤 밝혀본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하고 살 만해 지지 않을까?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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