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호의 정치원론] 나라 좀먹는 안티(anti) 정치

입력 2025-02-2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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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여야 적대감에 국민까지 증오감염
공동체의 정체성과 유대감 사라져
건전한 시민 힘합쳐 정치 감시해야

나를 내세우는 정치는 실종되고 남을 매도하는 정치가 판친다. 여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나라 망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종북 좌파 집단이다” 등의 구호로 투쟁 의지를 북돋는다. 야당과 그 지지자들은 “윤석열과 주변인들은 주술에 빠진 정신이상자다”, “국민의힘은 망령 난 극우 집단이다” 등의 비난으로 투쟁 원동력을 삼는다. 양쪽 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며 거부하는 데만 급급한 네거티브 공세, 안티(anti) 정치에 매몰돼 있다. 정작 어떤 국정 철학을 견지하는지는 여나 야나 확 다가오지 않는다.

정치권이 이러면 나라가 어려워진다. 여야 상호 적대감은 정치권 밖으로 확산해 국민까지 양분하고 분노에 감염되게 한다. 국민마저 내편 네편 싸우며 친구나 가족끼리도 의가 상한다. 명료한 국정 철학이 없으니 거기서 공통 분모를 찾을 수 없고, 하다못해 수사(修辭) 차원에서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국민이 공동체 일원으로 느껴야 할 정체성과 유대감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과연 국민 통합을 통한 국가의 위상 상승이나 구성원의 공동이익 추구와 가치 구현이 가능하겠는가. 안티 정치는 국민 영혼을 혼탁하게 하고 나라를 좀먹는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적 극단주의가 기승을 떨고 있다. 정치인과 정당이 특정의 적(敵)을 상정해 지지층의 증오를 유발하고, 흥분한 지지층을 제도 틀 바깥으로 동원해 세력을 유지·확대하려 든다. 적에 대한 유권자 분노가 자연스레 나오는 게 아니라 정치권의 책략으로 유도된다는 점에서 전략적 극단주의이기도 하다. 이 글로벌 경향은 미국마저 삼켰다. 트럼프는 미국 중산층의 분노를 배출할 거악(巨惡)으로 진보 및 외국 세력을 상정하고 자신은 성전(聖戰)의 투사라고 규정한다. 수틀리면 선거, 의회, 관료조직, 법원 등 제도 틀을 무시·비난하며 지지층을 자극한다. 미국은 지금 트럼프 취임 직후라 조용한 듯하나 앞으로가 걱정된다. 이미 그의 안티 극단주의로 양극적 내분이 위험 수준에 와 있다.

세계적으로 퍼진 문제라는 데 사안의 심각함이 있다. 시대가 워낙 급변하고 불확실하다 보니 대중은 막연한 불안감·불만감·상실감을 느낀다. 이럴수록 무언가 적을 찾아 그 탓을 하고 증오를 쏟아내며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 든다. 이런 유권자 심리를 더 악화시키고 악용하는 저품격 정치가 판치기 쉬운 상황이다. 유권자 심리는 시대 흐름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정치권이 이를 조장해 정파 이득을 챙기며 결국 국가와 국민을 위기에 빠뜨린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무기력하게 방관해선 안 될 일이다.

명색이 정치 지도자들과 수권 정당들이라면 준엄한 경고를 들어야 한다. 긍정의 정치를 해야 한다. 내세우는 국정 철학과 정책 의제가 무언지 명확하게 알리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물론 국내외의 적을 인식하고 적으로부터 생명, 행복, 자유 등 각종 가치를 지키는 것도 정치의 한 부분이다. 핵심 가치를 위협하는 적이라면 결연히 비판·응징해야 한다. 그러나 오직 적(적이라 생각되는 남)에 맞서는 일이 다라면 나라에 갈등만 깊어지고 국민 마음은 더 황폐해진다. 사회가 함께 가야 할 방향, 기해야 할 가치, 다뤄야 할 과제, 실천해야 할 방안을 국민 앞에 정정당당하게 던져야 한다. 그래야 적극적인 긍정의 힘이 우리 사회에 넘치고 남 욕만 하는 부정의 분위기가 약해질 수 있다.

이런 산발적 경고의 말이 정치권에 반향을 일으키기는 힘들다. 이미 양극적 전면전에 빠진 정파적 정치인들은 살아남으려고 안티 정치에 결사적으로 매달린다. 그러므로 중립지대의 언론인, 학자, 교사, 공무원, 각계 전문가, 시민 활동가, 그리고 건전한 양식의 일반 시민이 힘을 합쳐 정치권을 감시·견제해야 한다. 이 파수꾼들의 공동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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