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200조' 목전인데 자산운용사 절반이 적자…수수료 경쟁에 마케팅비↑

입력 2025-03-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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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순자산 200조 원 시대를 앞두고 있는데도 국내 자산운용사들은 '천수답' 수익성에 시름하고 있다. 운용사 간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케팅 비용이 급격하게 불어나고, 보수(수수료) 경쟁도 2년 넘게 지속되면서 수익성 악화가 더욱 심화했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자산운용사들의 지난해 실적은 역성장했다. 지난해 3분기 국내 자산운용사 483사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전체 운용사 중 절반 이상인 261개사가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회사 비율은 54.0%로 전 분기(43.7%)보다 10.3%p, 전년(53.5%)보다 0.5%p 상승했다.

업계는 수익성 악화의 배경으로 과도한 마케팅비 지출을 꼽는다. 지난해 국내 ETF 시장 상위 7개 운용사(미래·삼성·한국·KB·신한·키움·한화)의 광고선전비는 약 484억6200만 원 규모다. 지난해 350억 원 대비 무려 38.5%나 증가했다. 1년 광고선전비 증가 폭으로는 역대 최대 폭이다. 자산운용사들이 ETF 투자자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지하철역, 골프장 등 가리지 않고 공격적 마케팅에 나선 결과다.

자산운용사의 광고선전비 지출은 ETF 광고비로 봐도 무방하다. 보험사, 연기금 등 기관 고객을 상대로 하는 법인영업은 운용사 매니저들이 직접 발품을 파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반면, ETF 시장은 일반 개인투자자 대상 영업으로, 주로 광고를 통해 상품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는 방법으로 마케팅한다.

수수료 경쟁도 치열하다. KB자산운용은 지난달 11일부터 ‘RISE 미국S&P500’, ‘RISE미국 S&P500(H)’ ETF의 총보수를 0.01%에서 0.0047%로 낮추기로 했다. 오랫동안 지켜왔던 3위 자리를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뺏기자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방편으로 해석된다. 이는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를 기초지수로 따르는 ETF 중 최저 수준이다.

총보수 0.005%는 운용사가 ETF 10억 원어치를 팔아도 고작 5만 원 남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운용비용과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남는 게 없는 수준이다. 한화자산운용도 ‘PLUS 미국S&P500성장주’ ETF의 총보수를 기존 연 0.04%에서 0.0062%로 인하하며 ETF 상위 운용사들의 보수 경쟁에 참전했다.

운용사들이 ‘최저 수수료’를 내걸며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것은 개인투자자를 상대로 하는 영업에서 수수료는 가장 직관적인 유인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운용사들이 수익성이 낮은 ETF 상품을 두고 너도나도 수수료를 내리면서 ETF 시장이 지속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서 운용업계에서 한때 뜨거웠지만, 조용히 사라진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사업과 유사한 흐름이다. OCIO는 법인, 대학, 국가기관 등이 외부 증권사 또는 운용사에 권한을 주고 대형 자금을 굴리는 제도다. 증권 유관기관인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금융투자협회 등도 모두 OCIO 자금을 위탁 중이다. 그러나 소수의 기관들이 OCIO에 참여하다보니 운용사들은 낮은 보수를 받으면서 운용해야 했고, 결국 현재 대부분의 자산운용사들은 OCIO 조직을 폐지 또는 축소한 상태다.

자산운용사 고위 임원은 "ETF를 판매하기 위한 보수 낮추기와 과도한 마케팅비 지출로 자산운용사 간 치킨게임이 본격화하고 있다"면서 "각종 비용 부담을 감수할 수 있는 대형 운용사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으로 업계 환경이 점차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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