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마무리됐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5일 오후 2시부터 윤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을 열고 종합변론, 당사자 최종 의견진술을 들었습니다. 지난해 12월 14일 국회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고 헌재에 접수한 지 73일 만의 변론 종결이었죠.
탄핵 심판 변론에서 가장 큰 쟁점은 '비상계엄이 적법했냐'는 겁니다. 비상계엄 선포 요건은 물론 법적 절차를 지켰는지 따져야 한다는 거죠. 헌법 77조 1항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비상계엄 선포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던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취지로, 국회 측은 이에 대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내란 행위'라는 뜻으로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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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심판 마지막 변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윤 대통령 측은 이날도 야당의 줄탄핵 시도, 입법 독재, 예산 삭감 등을 거론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야권의 권력 남용으로 국정이 정상 작동하지 않는 마비 상태였다는 거죠.
특히 '가짜 투표용지'를 거론하며 부정선거 의혹도 재차 꺼내 들었는데요. 수차례 '간첩'을 언급하며 북한 지시에 따라 선거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긴급 대국민담화에서 내놓은 주장과 같습니다.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윤 대통령이 띄운 '부정선거론'을 조목조목 반박한 바 있는데요. 이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이날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 겁니다.
사실 부정선거론은 윤 대통령이 처음 꺼내 든 카드(?)는 아닙니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치러진 1987년 대선 이후 지난해 22대 총선까지 좌우 정당을 막론하고 끊임없이 제기됐죠.
그러나 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쳐 부정선거론을 제기하고, 이에 동조한 지지자들의 움직임 역시 심상찮아, 이를 단순한 음모론으로 치부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부정선거론이 이토록 길게 명맥을 잇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윤 대통령은 이날 직접 최후 진술에 나섰습니다. 약 70분간 진행한 탄핵심판 최후 진술의 분량은 약 2만 자였는데요. 그간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강조해온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당시 국회에 투입된 병력이 106명에 불과했다며 "병력 투입 시간이 불과 2시간도 안 된다.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체포조 가동 의혹 등에 대해서도 체포된 사람이 없고 민간인 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호수 위에 비친 달빛을 건져내려는 것과 같은 허황된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죠.
비상계엄 요건인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였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은 제가 취임하기 전부터 대통령 선제 탄핵을 주장했고 줄탄핵, 입법 폭주, 예산 폭거로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켜 왔다"고 말했는데요. 야당 의원들이 북한과 연계돼 있다는 주장도 펼쳤습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적발된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만 봐도 반국가세력의 실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며 "이들은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직접 지령을 받고, 군사시설 정보 등을 북한에 넘겼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이들은 북한 공작원과 접선해 직접 지령을 받고, 군사시설 정보 등을 북한에 넘겼다"면서 "심지어 북한의 지시에 따라 선거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지난 대선 직후에는 북한에서 '대통령 탄핵의 불씨를 지피라'는 지령이 내려왔다"고도 했죠.
부정선거 의혹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2023년 중앙선관위를 포함한 국가기관들이 북한에 의해 심각한 해킹을 당했다"며 "선관위는 이 같은 사실을 국정원으로부터 통보받고도 다른 국가기관들과 달리 점검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한 일부 점검 결과 심각한 보안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에 선관위 전산시스템 스크린 차원에서 소규모 병력을 보낸 것"이라고 강조했는데요.
또 "이런 조치들의 어떤 부분이 내란이고 범죄라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며 "비상계엄 자체가 불법이라면 계엄법은 왜 있으며, 합동참모본부에 계엄과는 왜 존재하는가"라고도 반문했죠.
이 같은 내용은 비상계엄 이후 지난해 12월 대국민담화를 시작으로 그동안 탄핵심판 과정에서 지속해서 주장한 내용과 같습니다.
윤 대통령은 '직무 복귀를 전제로 임기 단축도 염두에 두고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죠.

부정선거론은 이미 정치권에서 수차례 불거진 바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2020년 인천 연수구 선관위를 상대로 낸 선거무효 소송입니다. 제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민 전 의원은 '위조된 사전 투표지가 있다'는 취지로 선거 무효 소송을 제기한 바 있죠.
21대·22대 총선과 20대 대선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관련 소송은 모두 182건입니다. 대법원은 소송이 진행 중인 32건을 제외한 나머지 150건에 대해 근거가 없다며 모두 기각과 각하, 소 취하 등으로 종결했습니다. 민 전 의원이 제기한 소송의 경우 2년여간 심리 끝에 2022년 7월 원고 패소로 판결했습니다.
부정선거 의혹의 레퍼토리는 매번 유사합니다. 부정 개표가 대표적인데요. △일장기 투표지(인영이 동그랗게 뭉개진 투표지) △배춧잎 투표지(중복 인쇄된 투표지) △자석 투표지(다른 투표지와 붙은 투표지) △형상기억종이(접힌 흔적이 없는 투표지) 등 비정상적인 투표지들이 발견됐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인정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가능성을 살펴보고 검증한 뒤 모두 기각했죠.
민 전 의원의 위조 사전 투표지 주장을 규명하기 위해선 사전 투표지 4만5593장 전부를 이미지로 생성, 민 전 의원이 제공한 프로그램으로 QR코드를 일일이 판독했는데요. 민 전 의원이 '위조 투표지'라고 주장한 122장을 선별하고 그가 추천한 전문가를 감정인으로 삼아 인쇄 상태 등도 살폈죠. 그러나 모두 정상 투표지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민 전 의원 측이 '전산 조작'의 통로로 지목한 투표지 분류기는 제작 단계부터 무선 인터넷이 연결될 수 없게 만들어졌고 애초에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므로 조작할 수도, 조작할 이유도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윤 대통령 측도 인천 연수구뿐 아니라 다수의 선거구에서 부정 투표지가 발견됐다고 주장하는데요. 대법원 감정 결과 '접힌 흔적이 없는 투표지' 중 일부는 현미경 판독 결과 흔적이 있었고, 일부는 실제로 접힌 흔적이 없었으나 '접지 않고 투표함에 넣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관인이 뭉개진 '일장기 투표지'는 도장 잉크를 묻혀 날인할 경우 발생하는 사례로 판명 났고요. 현미경 판독 결과 대부분 관인이 발견됐으며 정상 투표용지를 사용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정됐습니다.
또 접착제가 묻은 투표지는 회송용 봉투에서 옮겨붙었을 수 있고, 두 장이 붙은 투표지는 정전기 탓이며, 비례선거 투표지가 지방선거 투표지에 일부 잘못 인쇄된 건 인쇄 과정에서 실수로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는데요. 대법원은 장기간 걸친 조사와 심리에도 부정선거를 뒷받침할 물증은 발견되지 않았고, 원고 측 주장도 모두 반박이 가능하므로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 낸 바 있습니다.
선관위도 '선거 소송의 투표함 검표에서 엄청난 가짜 투표지가 발견됐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과거 여러 차례 선거 소송 재검표에서 정규의 투표지가 아닌 가짜 투표지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못박았습니다.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이 해킹과 조작에 무방비하다'는 주장에는 "2023년 합동 보안 컨설팅 당시 국정원이 요구한 시스템 구성도 등을 사전 제공했고, 자체 보안시스템을 일부 적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의 해킹이 진행됐다"며 "해당 내용을 기반으로 전산시스템이 무방비하다는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했죠.

지금까지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은 모두 사법기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선관위도 수차례 설명을 통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는데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에 참여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방첩사 내부에서 작성된 보고서에서조차 '부정선거론은 근거가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부정선거론이 매 선거 부활하는(?) 이유는 뭘까요. 부정선거론은 지지층 결집 효과를 낳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의혹의 사실관계를 떠나 여론전을 위해 활용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건데요. 보수 진영의 일만은 아닙니다. 당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제18대 대선을 "3·15 부정선거와 맞먹는 부정선거"라고 주장한 바 있죠.
머나먼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0년 미국 대선 후보 시절부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해왔습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되자 법적 대응에도 나섰는데요. 여러 주에서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재검표를 주장하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증거 부족으로 연달아 이를 기각했죠.
그가 주장한 부정선거론에 동조한 일부 지지자들은 미국 국회의사당에 몰려가 난동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 의회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당선을 인증하기 위해 합동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난동으로 수명의 경찰관과 시위대가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졌는데요.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트럼프가 사실상 이 같은 폭력 사태를 조장했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띄운 부정선거 의혹, 그리고 여기에 동조한 일부 지지자들의 난동… 낯설지 않은 광경입니다.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는 다음 달 중순께로 관측됩니다. 앞선 두 전직 대통령 탄핵심판의 경우 금요일에 심판을 선고했는데, 선고 전후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점, 그간의 갈등을 매듭짓는 의미 등을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죠.
이에 윤 대통령 사건 선고도 다음 달 14일이 유력하되,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질 경우 이르면 다음 달 7일에도 선고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헌재의 결정이 나오기 전이지만, 민주당을 필두로 '조기 대선' 계산에 나선 상황. 조기 대선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향후 진행될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