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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정부효율부를 맡은 일론 머스크의 주도하에 연방정부 예산 삭감 조치가 나날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미 정부효율부에서는 미국 국책연구소 예산에도 칼을 대고 있다. NIH(미국 국립보건원) 인원과 예산 삭감을 비롯해, 의료 연구 중 간접연구 예산 40억 달러를 날려버렸다. 이 조치를 두고 미국에서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다른 국가, 특히 중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이 아무리 민간 연구가 활발하다고 해도 오젬픽 같은 혁신적 약물의 개발은 미국 국책 연구기관이 장기적으로 지원한 수많은 기초과학 연구자들의 선행연구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 증진을 위해서는 단순히 약물이나 직접적 치료 방법 외에도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치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질병 예방이다. 질병 예방과 건강에 대한 연구를 할 때는 장애뿐 아니라 경제적 요인과 사회문화적 요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다인종, 다민족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건강 관련 연구를 할 때 경제학, 사회학적 요소까지 함께 고려하는 게 당연한 이유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DEI(다양성과 포용) 프로그램을 무차별 삭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미국인의 건강 유지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연구 기반을 확대하는 데 빨간불로 이어지게 될 것이란 사실은 자명하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한국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미국이 겪는 혼란을 통해 모두가 건강할 권리를 누리기 위해 어떤 기초 연구가 필요한지 숙고할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그동안 취약했던 다양한 몸에 대한 연구는 건강권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나는 휠체어를 탄 아이를 두고 있기에 장애인들이 질병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장애인이 집에 있으면 가족이나 돌봄자들의 건강도 영향을 받는다. 휠체어를 탄 아이를 자주 안아 옮기는 나는 허리와 목 디스크에 취약하다.
지난 2월 21일 그런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연구발표에 참관할 일이 있었다. 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의 ‘사회적 환경과 조기노화: 지체장애인, 발달장애인, 발달장애인의 부모 연구(DiSEPA: Disability, Social Environment, and Premature Aging)’ 20년 차 연구의 1년 차 발표였다. 김 교수 연구팀은 각 집단별 1000명을 대상으로 향후 20년간 추적관찰한다.
이 자리에서 김 교수와 연구진은 다양한 장애인과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을 1년 동안 지켜본 내용을 발표했다. 장애당사자, 발달장애인들 부모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장애인의 부모들이 어떤 건강 악화를 감내하는지에 대한 인터뷰 결과가 발표되면서 부모들이 눈물을 닦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동안 장애 자녀를 돌보느라 정작 자기 건강을 뒷전에 두던 부모들은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는 점에 울컥했던 것이다.
이런 연구는 단순히 어떤 질병 예방 방법을 도출해 내고 약물을 개발하는 데에만 의의가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 겪고 있는 연구 인프라의 대혼란은 한국에서도 건강권을 위한 장기적 연구 투자의 현실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일깨운다. 그림자처럼 소외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건강권 확대 연구에 더 많은 국가와 민간의 투자가 필요하다.